등록 : 2016.09.28 19:43
수정 : 2016.09.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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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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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중부의 작은 탄광촌인 ‘아마스라’에서 있던 일이다. 마을을 통틀어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주목과 환영을 받았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길을 걷고 있으면 뒤에서 경적이 울린다. 돌아보면 포장이 안 된 길을 덜컹이며 버스가 달려온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차창 너머로 털이 덥수룩한 운전기사가 나를 바라보며 연신 경적을 울리고 있는 게 보인다. 비키라는 것이 아니다. ‘이 버스를 봐줘’라는 의미다. 버스를 바라보면 승객들이 모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들며 “메르하바!”(터키 인사말)라고 외쳐댔다. 일본 나리타 공항 출국 게이트를 통해 나오던 욘사마의 마음이 이때의 나와 같았을까.
여하튼 나는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주목과 환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숙소를 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잡은 숙소를 취소한 적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벽장 안에 샤워 시설이 있고,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올 법한 화려하고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는 호텔에 짐까지 푼 상태였다. 그런데 마을 광장에서 어슬렁거리다 만난 어느 가족이 나를 초대했다. 처음엔 그저 저녁이나 먹자는 줄 알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열한두살짜리 딸이 엉엉 울며 자고 가라고 졸랐다. 수염이 덥수룩하다 못해 대머리임에도 이마까지 수염이 빽빽이 자란, 아이의 아빠는 옛날 디즈니 만화에서 본 것 같은 낡고 작은 자동차에 가족을 태운 뒤 호텔로 내달렸다. 아이 아빠는 호텔 직원과 연신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했고, 취소 수수료도 없이 숙박비를 환불해왔다. “아는 사이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아니. 모르지, 하하하” 하고 답했다.
나와 차도르를 쓴 딸, 털보 아빠와 엄마. 우리 네 사람은 다시 덜덜거리는 차를 타고 ‘하하하’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빈방에 짐을 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들과 둘러앉았다. “돈두르마 예메크”, 그건 분명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얘기였다. 그런데 작은 사발에 담겨 나온 것은 흡사 ‘터키푸딩’ 같았다. 냉장고에 넣지 않은 것인지,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 죽처럼 된 상태였다. 낯선 모습이었다.
내가 “녹았는데?”라고 물었지만, 아이의 엄마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웃으며 질퍽거리는 아이스크림을 ‘아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떠먹었다. 아빠도, 딸도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역시 ‘아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후룩후룩 떠먹었다.
혼란스러웠다. 처참하게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는 모습이 그랬다.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먹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터키 아이스크림은 염소젖으로 만들어 녹아도 맛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마저 하게 됐다.
‘모두들 이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먹는다면, 괜찮은 맛일 것이다.’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나는, 그 가족들과 같이 사발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물론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먹는 방식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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