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23 19:39
수정 : 2016.11.23 19:53
[ESC] 김보통의 노잼, 노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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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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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못했다’라는 걸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게 공부를 안 했다. 특별한 비행을 저지르거나, 방황을 한 것은 아니다. 대신 평행봉을 했다. 체육특기생은 아니었다. 그냥 평행봉을 열심히 했다.
밤에 잠도 자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도 있었고, 노래를 들을 때도 있었으며, 만화책을 보기도 했다. 공부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 동이 틀 무렵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아직 교문은 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담을 넘어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한쪽에 교복 상의를 벗어놓고 평행봉을 했다. 전문적인 기술을 연마하거나 한 것도 아니다. 어느 동네 약수터에서나 쉽사리 목격할 수 있는 평행봉 할아버지들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운동을 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하고 한 5~6년에 한번쯤 생각해 보곤 하는데, 전국의 수많은 고3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만큼 평행봉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과정은 무릇 이런 법이리라.
열심히 평행봉을 하고 나면 그대로 교실로 들어가 책상을 모아놓고 드러누워 잠을 잤다. 깨어나 보면 수업이 끝나 있었다. 선생님들은 대체로 나를 깨우지 않았다. 주변의 아이들이 깨우려고 하면 “그냥 자게 둬라”고 말렸다고 한다.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풀’을 밀쳐두는 것과 비슷했다. 먹을 수도 없고, 보기도 예쁘지 않다. 하지만 베어내려면 몸이 젖을 것을 감수하고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심지어 해를 끼치지도 않으니), 그냥 안 보이는 곳으로 밀쳐두는 물풀 말이다.
“네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없다.”
수능 결과가 나온 뒤, 진학면담 때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공부 대신 평행봉만 열심히 했는데 갈 수 있는 대학이 있다면 그건 이 나라의 교육 제도와 입시 제도의 주목적인 열등생 솎아내기를 못한다는 것이니까.
뒤늦게 체대를 지망할 수도 없었다. 평행봉을 열심히 했다곤 하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약수터 할아버지들처럼 대롱대롱 몸을 흔드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제일 열심히 했던 것은 평행봉이 아닌 현실 외면이었다. 그래서 이도 저도 되지 못했고, 과정 중에 얻은 것도 없었다. 팔 근육이 조금 탄탄해지긴 했지만, 누가 어느 대학을 붙었네 떨어졌네 하는 와중에 그런 건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었다. 그제야 나는 진지하게 ‘아무래도 망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작은 했었다. 어른이 된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되지 않을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얼마 없는 선택지가 뭔지 채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 날려버릴 줄은 몰랐다.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말이다. 눈앞에선 손에 잡힐 듯이 선명히 불타오르는 미래가 보였다. 어차피 변변찮은 미래였겠지만, 그것마저 속절없이 재가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벌써 이십여년 전의 일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대부분은 당시 염려하던 것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엔 들어갔지만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회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선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업무를 맡았으며,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이후엔 어쩌다 만화를 그리게 되었고, 지금은 보시는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 도무지 맥락이란 것이 없는 세월이었다.
타임머신이 있어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수능을 마친 시점에서 생각하는 미래는 네가 뜻하는 대로 불행해지거나, 순순히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인생은 그저 맥락 없이 흘러갈 뿐이다.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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