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08 19:42
수정 : 2017.02.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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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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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김보통의 노잼, 노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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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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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영을 할 수 있다. 원래 물에 공포심도 별로 없었고, 2년 동안 수영장을 다니며 교육도 받았다.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지는 않지만, 강이든 바다든 아무 데나 던져놔도 유유히 수영할 수 있다. 내게 수영은 조깅과 비슷한 운동이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을 가끔 만난다. ‘물에 뜨지 않는 체질이야’, ‘튜브 없으면 분명히 죽을걸’, ‘물놀이는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저마다 취향이 다르고 신체적 능력이 다르니 ‘그렇구나’라고 그들을 인정하는 쪽이다. ‘만일의 사태에 목숨도 잃을 수 있는데 조금 배우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강요는 않는다. 정말 체질적으로 수영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여부를 떠나, 애초에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 빠지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라 강요할 순 없다.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신념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니고, 몸이 받지 않는다. 어떤 술이든 한 모금이 한계다. 더 마시면 머리가 아파온다.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느낌 자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느낌이 좋아 술을 마신다지만, 나는 그저 불편할 뿐이다. 당연히 자발적으로 마시는 일은 없다.
불행히도, 술을 권하는 사람은 자주 만난다. 자주랄 것도 없이 모든 술자리에서 마주한다. 지금이야 상사도 부하도 없는 상황이니 “술을 못 마십니다”라고 하면 그뿐, 두 번 권하는 사람이 없다. 회사 다닐 적엔 아주 괴로웠다. 잦은 술자리 때문에 가족과 멀어진 것인지, 가족과 멀어진 탓에 술자리가 늘어난 것인지, 좀처럼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던 선배들과의 회식 말이다. 점심에도 반주 한잔 하지 않으면 손을 떠는 거래처 사람들과의 술자리도 힘들었다. 제일 괴로웠던 건 옆자리에 앉아 ‘술은 정신력으로 먹는 것’이라는 타령을 밤새도록 하고 또 하던 동기였다.
이 동기는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에 대한 방대하고 장황한 교리를 구축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만취 상태에서 술주정 식으로 떠들어대는 통에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결론은 늘 비슷했다. 사실 자신도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신력으로 마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도 정신력으로 술을 마셔야 해’라고 말하는 그는 두 눈의 초점이 완전히 풀어진 채 침을 살짝 흘리고 있었다. 그 말만을 고장난 로봇처럼 반복했다.
하루는 동기에게 “너는 수영할 수 있어?” 하고 물었다. 역시 정신력 타령을 하던 술자리였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니, 못하는데”라고 말했다. “수영도 정신력으로 해보지 그래?” 하고 내가 묻자, 황당한 소리를 들은 듯한 표정으로 “무슨 소리야? 그걸 어떻게 정신력으로 해?”라고 되물었다. 나는 “내겐 술이 그래.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야”라고 답했다. 동기는 전혀 수긍이 되지 않는단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살면서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타인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을 왜 못하냐고 타박하는 것 역시 안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정신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뇌에서 지운 채 살려고 한다. 쉽진 않다. 이 즐거움을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에, 강하게 권하고 싶다는 충동도 종종 받는다. 게다가 상대가 곤란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비뚤어진 쾌감에 끌릴 때도 있다.
그때마다 동기를 떠올린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땐 누구보다 예의바른 동기. 명절이면 사무실로 근처 유흥주점에서 단골 고객한테 보내는 양말 같은 선물이 차곡차곡 배달되던 그 동기. 올해도 선물 많이 받았겠지?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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