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10 20:42
수정 : 2017.05.1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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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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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김보통의 노잼, 노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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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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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던 겨울이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오셨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닌지라 동생과 나는 밥숟가락을 들고 덤벼들어 퍼먹었다. 사이좋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며 먹지는 못했다. 대신 파키케팔로사우루스(두께가 30㎝나 되는 머리뼈를 이용한 박치기를 주요 공격 수단으로 삼았을 것이라 추정되는 백악기 공룡. 큰 머리통에 비해 뇌는 달걀 크기 정도라고)의 영역 다툼처럼 맹렬히 박치기를 해가며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우기 시작했다.
승부는 두개골이 단단한 건지, 인내심이 강한 건지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동생에게로 기울었다. 결국 두개골이 무른 건지, 인내심이 약한 건지 줄곧 밀리던 나는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동생의 머리통을 난타해 버렸다. 동생은 먹던 아이스크림을 뱉으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틈을 타 아이스크림 통을 낚아채 허겁지겁 퍼먹었다. 야만의 현장이었다.
형제가 사이좋게 나눠 먹는 흐뭇한 모습을 바라셨을 아버지는 단 몇분 사이에 벌어진 참사에 분노했다. 아버지는 아이스크림 통을 빼앗아 집 밖 땅바닥에 그대로 패대기친 뒤 말했다.
“개새끼들도 이러진 않어!”
당시 우리는 치와와 ‘방울이’와 그 새끼들을 키우고 있었다. 종이박스 안에 깔아놓은 담요 위에서 쉬고 있던 방울이 가족은 고개를 내밀어 ‘뭐야, 무슨 일이야’ 하는 식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다시는 사오나 봐라”라고 선언한 뒤 일하러 가버렸다. 동생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숟가락을 빨아보았지만 팽개쳐진 아이스크림만 더 생각났다. 반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잠시 뒤 집 밖으로 나왔다. 한 손에는 여전히 숟가락을 든 채였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쉽게 녹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었다.
아이스크림 통은 가까운 곳에 떨어져 있었다. 기대에 부푼 채 통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녹지 않았다. 그러나 흙을 한바탕 뒤집어쓴 채였다. 어쩔 수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자리에 쭈그려 앉아 숟가락으로 흙 묻은 부분을 살살 긁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유물을 발굴한 인디아나 존스처럼 아이스크림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그동안에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다시 맹렬한 싸움이 벌어질 테니까. 별수 없이 나는 덜덜 떨며 흙을 걷어내고 남은 아이스크림을 야금야금 먹었다. 역시 야만의 현장이었다.
그러면서 방울이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 말처럼 방울이 새끼들은 우리 같진 않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그럴 만한 힘도 없겠지만 젖 한번 더 물겠다고 서로를 깨물거나 박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강아지들이 우리 형제보다 사이가 좋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특별히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방울이에겐 새끼들의 수보다 많은 젖꼭지가 있었지만, 우리에겐 아이스크림 통이 하나뿐이라는 것이었다. 결핍과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당시의 나도 그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 되는 게 세상에 몇이나 되는가. 우리는 아이스크림뿐이 아닌 거의 모든 부분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대상이 소시지, 계란, 과자와 오뎅으로 바뀔 뿐 늘 싸워 쟁취해야 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동생과의 기억의 대부분은 싸움이었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형제끼리 양보하고 나눠야 한다”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니 그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
그러니 바라건대, 부디 지금도 어디선가 밥숟가락으로 서로를 때려가며 뺏고 빼앗기고 있을 불행한(?) 형제자매를 위해 정확히 등분할 수 있는 통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올여름 대흥행할 것이라 확신한다.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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