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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7 17:29 수정 : 2019.03.18 09:22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공부에 전혀 재능을 보이지 못했던 어눌한 아들이 걱정이 된 부모님은 우리 집에 하숙을 하던 대학생에게 내 과외를 맡겼다. 새벽 맑은 정신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에 따라 일주일에 세번은 어둑한 새벽에 그 학생의 방으로 가야 했다. 아둔한데다 잠까지 덜 깬 나는 ‘6 더하기 7’과 같은 정도의 쉬운 산수 문제도 풀지 못했다. 설명을 거듭하던 그 대학생은 결국 화가 나서 내가 오답을 댈 때마다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셀 수도 없었다. 껌껌하고 추운 겨울 새벽,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그 방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폭행을 당했다. 그에게 맞으며 얼핏 그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휘두르며 쾌락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짓 내 멍청함을 빙자해 화를 냈지만 다 잡은 쥐를 놀리는 고양이 같았다. 그날 나는 폭력이라는 것이 흉측하다는 생각을 했다. 불행히 그 뒤로도 12년간의 학교생활 동안 교사들로부터 항거할 수 없는 흉측한 폭력을 일상으로 견디며 살아야 했다. 최근 이슈가 된 인터넷 정보업체의 사장들이 직원들에게 가한 폭력을 보면서 어릴 때의 그 경험이 다시 떠올랐다.

야만이라 불리는 행위는 폭력을 기본 수단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야만을 폭력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야만의 목적이 쾌락에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야만을 수행하기 위한 기능일 뿐이므로, 야만은 폭력이 아니다. 야만은 권력 향유의 가장 비천한 모습이다. 대항할 수 없는 대상, 그런 상태에 있는 상대에게, 그 상대가 동물이건 인간이건 상관없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일부 또는 최대치를 사용하여 상대의 파멸을 목도하는 과정을 가진다. 죽은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야만이다. 최소한 21세기 한국 사회의 야만은 그렇다.

여성을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들어 성적 쾌락을 누리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공유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야만을 한국 사회는 넘치도록 보고 듣고 있다. 게다가 한 언론사 가문의 엽기적 행각과 추문을 들으니 그들의 야만도 최악 중에 으뜸인 것 같다. 직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인터넷 정보업체 사장들의 돈벌이도 여성을 성폭력의 피해자로 만드는 데 적극 협력한 대가였다. 그들의 쾌락은 성을 매개로 삼았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에게 압도적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만을 가능하게 하는 압도적 폭력, 거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것은 ‘졌다’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몰락’하는 느낌이라는 것을.

가해자가 휘두르는 야만의 권력은 그 개인의 성격과 인품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게 부여된 사회적 권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한 약한 개인을 압도하는 사회적 권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문제의 답은 표면에 있을 때가 많다. 가해자들은 언제나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에 있는 것을 즐긴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이 한 개인이나 집단을 무기력 상태로 만드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이제 답은 분명해 진다.

<공범자들>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문화방송>의 김민식 피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오히려 외친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공허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계속 외친다. 그의 외침에 연대한 수많은 작은 개인의 외침이 쌓이고 쌓여 정권을 바꾸고 야만을 감옥에 가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장자연을 대신해, 버닝썬의 피해자들, 김학의의 피해자들을 대신해 외쳐야 한다. 그 야만이 내게 미치지 못하도록 함께 외칠 때 우리는 야만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 외치기라도 해야 한다. 우리는 항거 불능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더 참혹해질 거라는 그들의 협박에 굴복하는 것, 그 자체가 참혹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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