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13 19:30
수정 : 2016.10.14 08:53
이송희일의 자니?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라는 예능 프로그램. 요즘 들어, ‘가부장 남편’이 부쩍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고 있다. 가사노동과 육아는 등한시한 채 아이들을 더 낳자고 철없이 졸라대거나, 날마다 바깥에서 술을 마시거나, 혼자 취미 생활을 여유롭게 탐닉하는 남편들이다. 때론 아내와 맞벌이를 하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우아한 귀족 남편도 등장한다. 바깥일은 남편, 가정일은 아내 몫이라는 낡은 성역할 관념 속에 화석처럼 굳어 있는 사람들.
하지만 이내 사회자와 패널들의 시대착오적이라는 공격에 남편들은 점점 좌불안석의 표정을 짓는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사노동과 육아를 조금이나마 돕는 게 가족 화목에 도움이 된다는 알량한 충고에 적이 곤혹스러워한다. 관중 야유에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그 순간에도 어떤 남편은 고집을 굽히지 않지만, 반면 어떤 남편은 못 이기는 척 앞으로 집안일을 돕겠다며 자신의 관대함과 시혜적인 태도를 과시하며 박수를 받는다.
어쩌면 그 무대에 오른 남편들의 곤란해하는 모습이야말로 지금 한국 남성들의 분열적 심리를 상징적으로 재현하고 있지 싶다.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이 여성의 희생을 방석 삼는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애써 감추거나 무시하는 가부장제의 낡은 초상들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무라는 관중들에 당혹한 나머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거나 앞으로 돕고 살겠다는 ‘시혜적인’ 입장을 취하는 일련의 태도 역시, 최근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일부 남성들의 모호한 표정들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가부장제 기득권에 안주해왔는지 그 가해의 역사를 반성하는 일은 그나마 변화의 기미를 품고 있다. 또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돕는 것도 가부장제에 무임승차한 저 목석들의 몰염치보다 나은 일일 게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정체화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이 처한 위치와 남성 주체에 대한 질문을 봉인한다는 점에서 성별을 둘러싼 권력관계의 재구성 문제에까지 그 인식이 미치는 못하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을 여성 고유의 문제로 괄호치고, 남성들의 ‘가해자성’을 폭로하면서 자기는 그에 가담하고 있지 않다는 걸 입증하려는 온갖 면피의 말풍선들 말이다.
가령, 저 예능 속 한국 남편들 얼굴에 스웨덴의 ’라떼 아빠들’(Latte Pappas)의 표정을 대조하면 어떻게 될까? 남성의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90일로 강제 의무화한 후, 스웨덴 아버지들은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운 채 동네의 다른 아버지들과 카페에 모여 라떼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돌봄 노동의 시간을 통해 뜻하지 않게 가족과의 관계, 더 나아가 자기 삶에 대해 성찰할 시간까지 덤으로 얻고 있다고 한다.
재잘거리는 라떼 아빠들에 비해, 관중 야유에 황망해하고 있는 한국 아빠들은 과연 어떤 표정일까? 한편으론 한 줌의 가부장제 기득권을 유지하고픈 가해자의 표정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수혜에 사로잡혀 더 많은 사회적 권리, 더 확장된 삶의 풍경을 놓치고 있는 피해자의 표정일 것이다.
자명하게도, 타인에 대한 억압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억압으로 되돌아온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지우고 동등한 주체로 대면하기 위해선 사회구조 변화뿐만 아니라 기존 남성 주체의 재구성도 요청될 수밖에 없다. 이 인식론적 전환은 스웨덴 라떼 아빠들이 누리는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정치적 의제들을 진동시킬 수밖에 없다. 어쩌면 페미니즘은 ‘남성성’의 감옥에서 당신을 해방시키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여성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송희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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