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24 19:39
수정 : 2016.11.24 20:34
이송희일의 자니?
이쯤이면 최순실-차은택 범신론을 주장해도 무방할 지경이겠다. 도대체 문화-스포츠계에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프로불참러’ 조세호도 울고 갈 정도로 모든 곳에 영역표시를 한 것만 같다. 평창올림픽, 문화창조융성벨트, 문화계 블랙리스트, 김연아 사태 등 눈만 뜨면 그들이 남긴 흔적을 뒤쫓느라 정신이 다 혼미할 지경이다. 심지어 지난 밤 부산의 한 매체는 차은택과 김종 전 차관이 영화제 국고지원 중단 등을 내세워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상영 중단을 압박했다는 기사를 타전했다. 덕분에 결국 올해 부산영화제는 반토막이 났고, 영화제의 산역사였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기조로 내세웠던 ‘문화 융성'은 사실상 그들만의 잔치판이 열렸다는 환호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의 그 지겨운 ‘한류' 타령은 어쩌면 문화판에서 은밀히 노다지를 긁어모으고 있던 상황에 대한 자기 최면의 어설픈 주문이지 않았을까. 지난 엠비(MB) 정부가 아무리 문화판을 망쳐놓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문화계를 통째로 비선실세의 식탁 위에 올려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엠비 정부는 뉴라이트를 싱크탱크 삼아 고도로 편향된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딴엔 글줄깨나 읽었다는 흉내를 내느라 좌파이론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를 거꾸로 뒤집어, 좌편향된 문화계의 헤게모니를 우익화하자는 게 그들의 주된 전략이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추진된 문화 발전 기획들과 정부 지원책들로 인해 문화계가 좌파양성소가 됐다는 그 과대망상이 어처구니 없는 숙청의 난장판을 빚어냈던 것이다. 사실 엠비는 자타가 공인한 토건족답게 4대강과 건설사업에 눈독을 들였지 문화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유인촌 문체부 체제’가 내건 슬로건은 ‘돈이 되지 않는 문화는 없어도 된다'. 각종 문화지원 정책을 신자유주의 논리로 축소재편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문화인들을 솎아내자는 속물 의식의 노골화, 그것이 엠비 정부의 문화정책이었다.
반면,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은 한 마디로 ‘사유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왜 아니겠는가,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와 비선세력이지 않는가. 이미 엠비 정권이 휩쓸고 지나간 토목과 건설 분야 대신, 아직 미개척지인 문화와 스포츠야말로 그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줄 황금의 땅이었을 게다. 먼저 정유라가 말을 타고 지나가면, 그 자리에 말똥 대신 황금이 쌓여갔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이득을 꾀하느라 말 지나가는 자리마다 수백 억을 정성스레 공물로 바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리운 김종 전 차관과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이 각종 재단을 만들며 휘젓고 다녔다. ‘늘품체조'같이 기이한 사업들에 스포츠 스타들을 줄세우고, 문화 관련 정부기관에 자신들의 사적 인맥을 꼼꼼하게 채워넣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김연아와 씨제이(CJ) 이미경 부사장처럼 눈밖에 났다. 각종 블랙리스트로 문화계 눈엣가시들을 관리하며 불이익을 줬고, 지레 겁먹은 사람들은 자기검열에 충실하기 바빴다. 온갖 ‘국뽕영화'를 만들어 자진헌납했던 영화계 대기업들을 보라. 찍히느냐, 복종하느냐, 그 두 개의 길만 존재한 계절이었다.
과연 내가 이러려고 한국의 영화인이 되었나 자괴감 들고 괴로운 나날이다. 함께 작업하고 있는 제작-배급사 ‘시네마달'이 세월호 영화들의 연이은 배급으로 모종의 블랙리스트 상단에 기재되면서 몇 년간 모든 정부지원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엠비 정부가 유치한 우익의 정념으로 할퀴고 지나간 그 자리에, 간 큰 도적들이 등장해 그나마 남아 있는 문화계 자원을 수탈해갔던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이 더 가난해지고 피폐해지는 동안 문화융성이라는 이름으로 뱃속을 채운 저 지독한 탐욕. 10년을 그렇게 연타로 당하고 살았더니 심신이 너덜거린다. 이제 정말, 뒤집어질 때도 됐다.
이송희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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