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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8 18:50 수정 : 2017.05.18 19:05

이송희일의 자니?

방송 3사가 실시한 19대 대선 출구조사에 새로운 항목이 등장했다. 유권자들의 종교 성향을 처음으로 통계화한 것이다. 이번 출구조사의 예측도가 비교적 정확했던 걸 감안하면, 종교 성향에 따른 유권자들의 표심을 읽어내는 유의미한 지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불교 신자는 홍준표(35.5%)-문재인(33.7%)-안철수(18.7%), 가톨릭 신자는 문재인(46.6%)-안철수(21.8%)-홍준표(20.1%), 그리고 개신교는 문재인(39.3%)-안철수(25.9%)-홍준표(21.5%) 순으로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대형교회들과 기독자유당으로 구성된 ‘범기독교계’가 지지했던 홍준표 후보가 정작 빅3 후보 중 개신교도들로부터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대신, 홍준표 후보는 불교 신자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전체 인구의 30%가량이 불교 신자일 정도로 한국에서 불교가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경상도의 지역적 표심이 반영됐으리라. 반면 개신교도가 많은 호남은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반동성애가 시대정신이라며 홍준표 지지를 호소했던 자칭 범기독교계의 야심이 뻘쭘해질 지경이다.

홍준표 후보 역시 ‘동성애를 엄벌해야 한다’는 막말을 일삼으며 반동성애 프레임을 선거 구도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지만, 개표 결과는 그 혐오 프레임이 거의 작동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출구조사에서 개신교 신자들의 후보 선택 기준은 부패 청산, 경제 성장, 청렴, 국민통합, 안보 순이었다. 각 지역색과 기존의 투표 심리가 반영되고, 여기에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더해졌다는 의미다.

비단 이 결과에 민망해지는 건 홍준표 후보뿐만이 아닐 터다. 미국 보수들이 냉전 체제가 끝나자 ‘반동성애’ 의제를 만들어냈듯, 보수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반동성애 의제를 던진 홍준표의 낚시에 문재인 캠프가 반응했다. 나중에 사과의 뜻을 전하긴 했지만, 대선토론에서 거듭 동성애 반대를 천명했다. 우발적이라기보다는 지난 총선부터 보수 기독교계를 애틋하게 짝사랑해왔던 민주당의 우클릭 전략의 일환이었다. 거기에 뒤질세라, 안철수 캠프도 뒤늦게 야단법석으로 동성애 혐오를 발산했다.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낯뜨거운 모양새. 그동안 성소수자 진영이 기독교가 세속화된 한국에서 동성애 혐오를 주창하는 극우세력들은 기껏 기독자유당이 총선에서 얻은 2.6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역설해왔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서로 앞다퉈 그 시류에 편승한 결과가 겨우 이것이다. 동성애 혐오로 얻을 표는 애초부터 미미했던 것이다.

이들 정치권이 이렇게 실익도 없는 혐오의 카르텔에 몰두하는 동안, 현실 속 성소수자들은 지옥의 한 철을 보내야 했다. 오늘도 비보가 날아들었다. 전역을 한 달 남겨놓은 육군 대위가 영외에서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이 구형됐다. 기독교 장로이기도 한 현 육군총장의 지휘 아래 데이트앱까지 뒤져 치밀하게 함정수사를 펼친 육군의 행태가 게이 군인들을 색출했던 독일 나치의 야만을 똑 닮았다.

언제까지 이 야만을 방치할 것인가. 언제까지 반동성애 맥거핀에 춤추며 성소수자들을 선거용 제물로 바칠 것인가. 그저 그 한마디,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그 지극히 당연한 말만 여기 이 나라의 주춧돌에 새겨넣으면 될 일이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고 다들 들떠 있는 요즘, 나는 방치된 저 야만이 한없이 서럽기만 하다.

이송희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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