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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0 19:25 수정 : 2016.11.10 19:35

권혁란의 스리랑카 한국어 교실

한 몸에 모든 계절을 담은 꽃들. 권혁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떤 작품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성석제의 소설에서 문학을 너무 사랑해, 사는 곳도 인천 문학동이고 죽을 때도 ‘문하-학’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떠날 사람이라는 등장인물을 본 적이 있다. 배꼽을 쥐고 웃었던 기억만 생생할 뿐. 그때의 나는 소위 ‘문학소녀’를 지나 ‘문청’으로 불리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시와 소설을 쓰거나 책을 읽느라 날밤을 새우거나 옮겨 적으면서 시인이나 소설가로 등단하려고 했던 때. 그 시절에도 여자가 글 좀 쓰거나 책 좀 읽으면 문학소녀라는 둥, 여류작가로 표기되면서 문학보단 생물학적 성의 종류를 밝혀 괄호 안에 도드라지게 묶어 표현했었다.

스리랑카에 와서 처음 쓴 일기는 이랬다. 여긴 사시사철 꽃이 펴. 이 꽃 저 꽃, 꽃들이 하염없이 피어나고 지고 있어. 한 나무에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있어. 꽃이 피었어, 꽃이 졌어, 너는 나의 봄이야, 너는 내 인생의 여름이었어, 너 없는 날들은 온통 겨울이야. 그런 문장으로 시 한 편을 완성하는 사람들에겐 도무지 꽃도 계절의 변화도 ‘무쓸모’한, 새로울 게 없는 땅이야. 확 쏟아지는 빗줄기와 인도양을 건너온 바람의 결을, 꽃잎의 부드러움을 굳이, 굳이 가장 슬픈 척, 날카롭고 예민한 척, 문장 하나로 옮겨 적고 삶의 비의를 알아낸 양 거들먹거리는 시인이나 작가는 살 수 없는 곳이야.

연꽃과 코코넛을 신에게 바치려는 스리랑카 내 학생. 웃는 얼굴과 들고 있는 꽃이 그냥 시다. 권혁란
아무튼. 그 시절엔 왜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농사일을 마치고 밤중에 흐릿한 백열등 아래서 세로줄로 된 소설책을 소리 내어 읽거나 가끔 두루마기를 입고 한자로 일필휘지 제문을 쓰시던 아버지의 피 탓일까. 종종 글짓기로 상을 받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잊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다. 흐름이 아주 자연스러워 시인이나 작가를 일종의 직업으로 여겼을 것이다. 한국어 교사가 되어 한글을 처음 배우는 외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부터는 자주 엄마 생각이 떠올랐다. 무학인 내 엄마는 여섯 자식 중 막내인 내가 글을 읽고 쓰기 시작할 때서야 몹시 부끄러워하며 글자를 배우고 싶어 하셨다. 자식들을 다 키운 연후에야 혼자만 못 읽고 못 쓴다는 사실을 통렬히 깨달으신 탓일 게다. 책을 펴고 있노라면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읽느냐고 탄복했고, 빼곡한 일기장을 보면서 무슨 글자를 그렇게 많이 쓰느냐고 놀라워하셨다. 기역니은부터, 아야어여부터 글자를 가르쳐드렸었다. 그러나 끝내, 엄마는 글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한자씩 다 읽을 수는 있을지언정 단어나 문장을 해독하시지는 못하셨으니까.

스리랑카 학생과 가족들. 이 학생 집에도 책 한권 없긴 마찬가지. 문학은 몸으로 할 뿐. 권혁란
삼모작을 시작하는 논. 흰 새 한 마리와 농사를 짓는 농부. 시는 쓰지 않는다. 권혁란
어느 날 스리랑카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곳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을 볼 수가 없는지, 서점에는 왜 그렇게도 문학서가 찾기 어려운지, 스무 살이 되기까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시인이나 소설가는 어디 있는지. 감명 깊게 읽은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써내라고 나누어준 종이는 앙상한 몇 글자만 쓰여 있었다. 내 학생들이 학문에 뜻을 세운 사람이 아닌 데다 궁벽한 시골에 살고 있으니 이러려니, 생각했다. 스리랑카 문단 현황을 살펴보려던 서너 번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아직도 이 나라의 시인을, 작가를 찾지 못했다. 요즘 시가 잘 쓰이지 않는 나라에서, 작가입네 주억거리는 사람이 없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땅에서, ‘문단 내 성폭력’이라는 태그(#)를 달고 쉼 없이 펼쳐지는 한국 남성 작가들의 허접하고 꼴사나운 행태를 읽고 있다. 낱낱이 밝히는 여자들의 폭로와 고백과 피해의 경험을 읽고 있다. 명백히, 나도 겪은 일들이다. 서울 집 책장에는 저 남자들의 책들이 꽂혀 있다. 한때 탄복했던 문장들을, 밑줄을 그었던 구절들을, 인터뷰했던 그 얼굴들을 기억한다. 그 남자 작가들이 문학으로 이루어낸 세계가 고작 어린 여자들을 향한 유혹과 성폭력과 구역질 나는 자살 협박이라는 것이 하도 비루하여 분노조차 민망하다. 술잔을 붙든 손으로 생의 비밀을 혼자만 아는 양 한껏 문학의 포즈를 취한 후, 앙상한 문장들을 꿰어 묶은 자기 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옆에 끼고서 여자야, 이리 와, 다 가르쳐 줄게, 시인 만들어 줄게, 작가 하게 해줄 게, 그러니 일단은 한 번 하자! 소리쳤을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글 쓰는 법을 가르치거나 배울 필요도 없는 곳에서 한 마디 질러본다. 제발! 문학을 가르치지 말아줘. 그냥 성석제 소설 속의 저 문학 폐인처럼, 문하-학, 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혼자 뱉어줘.

권혁란 코이카 스리랑카 한국어 교사·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정직하고 소박한 고기잡이. 책 따위 안 읽어도 사는 데 지장없다. 권혁란

여긴 사시사철 꽃이 펴. 이 꽃 저 꽃, 꽃들이 하염없이 피어나고 지고 있어. 권혁란

스리랑카 여자. 뒷모습조차 어찌나 꼿꼿하고 당당한지.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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