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22 18:42
수정 : 2016.12.22 19:00
권혁란의 스리랑카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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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나이도 많은, 소위 성인인 학생들. 나는 남자를 키워본 적이 없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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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칸 미니수 아뗀 밧 카너와.’ 스리랑카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어요라는 뜻이다. 도구격 조사 ‘으로’를 사용한 문화를 포함한 문장을 배웠으므로 물론 현지인들처럼 ‘손으로’ 밥을 먹었다. 풀풀 흩어지는 밥알을 조물조물 모아서 입에 넣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은 쉽진 않았고 먹고 난 후에는 손가락 끝에서 오래 음식냄새가 났다. 런치 팩을 싸온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을 때, 모습을 볼라치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넓은 바나나 잎에 가득 담긴 젖은 반찬과 부슬부슬한 밥을 섬세하고 단호한 손놀림으로 동그랗게 뭉쳐 알갱이 하나 흘리지 않고 쏙쏙 입으로 가져가는데, 먹는 시간은 길어야 삼분 남짓. 속전속결, 달인의 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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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의 가족사진. 얼굴이 다 닮았다. 스리랑카 엄마들은 다 밥을 먹여준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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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랑거의 집에 가정방문을 갔을 때였다. 뷔페처럼 놓인 음식을 각자의 접시에 담아와 막 먹으려던 찰나, 마두랑거가 제 손은 전혀 쓰지 않고 엄마가 먹여줄 때만 입을 벌리는 걸 봤다. 나보다 나이가 적을 게 분명한, 그러나 외관상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마두랑거 엄마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들을 따라다니며 한입씩 먹여주고 있었다. 아기새처럼 밥을 받아먹는 마두랑거는 스물두 살.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가 몇 살인데 왜 밥을 혼자 못 먹어요? 손이 없어요?” 동시에 여러 명의 학생들이 항변했다. “엄마하고 같이 밥을 먹을 땐 엄마가 꼭 밥을 먹여줘요. 스리랑카 문화예요.” 수저 사용법을 배움으로써 밥상머리 예절과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생존법을 익힌 한국인으로서 놀랄 수밖에. 엄마가 꼭 밥을 먹여줘?! 과연 그럴까 싶어 마흔 살이 넘은, 아누라다씨에게 재차 물어보았다. 그는 눈빛까지 아련해지면서 “우리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나는 결혼을 했었지만, 그때까지도 엄마가 밥을 먹여줬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지금은 밥을 먹여주는 엄마가 없어서 많이 슬퍼요.” 요컨대 자녀에게 밥을 손수 먹여주는 것은 엄마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가장 행복한 행위라는 것. 나이는 상관없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 제목이 뭐냐고 물었을 때 들은 답도 ‘어머니.’ 험한 길을 따라 노멀 버스를 타고 다닐 때도 운전석 옆 비디오에서 처량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엄마, 엄마를 노래하고 있는 늙수구레한 남자가수들을 수차례나 볼 수 있었다. 집집마다 신이나 천사를 보낼 수 없어 대신 보냈다는 엄마라는 그 존재. 세상 어디나 ‘엄마’라는 인간의 위치와 역할과 의미, 그리고 호명해 낼 때의 상황은 역시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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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룸과 딜룸의 엄마. 일년 동안 도시락을 싸서 보내준 사람들이다. 점심을 책임져준 고마운 두 사람. 감사합니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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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내 엄마와 같아요, 라고 쓴 닐루셔의 가족. 옆에 서 있어도 선생님은 엄마가 아니에요.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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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데다 외국에 나와 혼자 살고 있으니 정황상 미혼으로 보는 이도 많고 엄마일 거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지만, 나는 분명 두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다. 육아에 집중하던 시절, 딸들에 대한 애정의 깊이나 돌봄이 조금 지나쳐 요즘이라면 소위 ‘맘충’으로 불렸을지도 모르겠다. 넘칠 만큼 싸고돌았고 원없이 사랑했다. 엄마, 모성에 대한 책을 만들기도 했고 쓰기도 했다. <엄마 없어서 슬펐니?>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그것. 아무튼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것은 분명하고 현재 ‘빼박캔트 엄마’라 해도 전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하해와 같고 천사 같고 신 같은 존재로 ‘엄마’를 호명하고 사용하는 방식은 어색하고 민망하다. 더욱이 남자들이 엄마를 불러낼 때 품고 있는 이미지와 의미는 불편할 정도. 그러니 한국어말하기 대회를 준비할 때 학생들이 쓴 원고를 읽고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스무 살 넘은, 덩치는 산만한 스리랑카 청년 여러 명이, 아들은 키워본 적도 없는 나에게, 심지어 내 아이들과는 멀리 있는데, ‘선생님은 우리 엄마와 똑같아요.’ ‘나는 엄마가 두 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선생님은 엄마처럼 너무 친절해요.’라고 써놓았던 것이다. (악, 선생님은 선생님일 뿐 엄마가 아니에요. 아무리 친절하고 다정해도 엄마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권혁란 코이카 스리랑카 한국어 교사,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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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절하는 학생들. 엄마와 선생은 똑같다. 친구의 엄마에게도 똑같이 절한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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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의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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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의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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