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15 18:48
수정 : 2017.06.15 18:55
권혁란의 스리랑카 한국어 교실
종종 수습하기 어려울 만큼 소증(素症)이 솟았다. 한번 발병(?)하면 뭔가를 배불리 먹은 후에도 이해 못할 허기가 느껴졌는데 실제로 뱃가죽이 휑하게 비어 등허리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느라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는 상태의 갈급한, 어서 남의 살을 씹어 먹고 싶다는 성마른 욕망이었다. 고기반찬 없으면 숟가락 내려놓는 육식주의자가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소증이 솟구치면 삼겹살에 상추쌈이, 당면 부드러운 불고기 덮밥이, 따뜻한 수육이, 쫀득한 초밥 같은 회식 메뉴가 눈앞에 오락가락했다. 난데없이 뜨거운 라면이, 바삭하고 짠 과자까지 그리워 안절부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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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야 주스. 그냥 파파야만 갈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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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러 캔더. 야채와 쌀을 갈아넣은 일종의 죽이다. 기력 없이 늘어져있으면 아래층 여자가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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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그리고 카카오톡에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조석으로, 야식으로, 간식으로 먹었다는 그날의 음식을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찍은 사진을 줄기차게 올려댔다. 어쩌다 구해 보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음식이야기들이 차고 넘쳤다. 누가 잘 먹나 내기하는 것처럼 뻘뻘 땀을 흘리면서 쩝쩝 호로록 음식을 삼키는 소리, 터져 나갈 듯 가득 찬 냉장고 속 음식재료들, 남자여자 가릴 것 없이 전 국민이 요리사인 양 척척 음식을 만들고 먹어치우는 모양을 텅 빈 집에서 넋 놓고 보다가 문득 집 안을 둘러보면 손바닥만 한 냉장고엔 라면 스프나 짜장 가루 같은 것들만 안쓰럽게 굳어가고 있을 뿐.
천천히, 어쩔 수 없으나 기쁜 마음으로 스리랑카 음식을 사랑하는 베지테리언이 되어갔다. 나름 살림 구단 경력이라 요리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으나 부엌살림의 간소함 덕분에, 남의 나라 먹거리에 적응하느라 몸매도 단순해졌다. You are what you want.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다. 우리 몸은 그동안 우리가 섭취한 것이다. 무엇을 먹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이 먹은 것들의 결정체다. 이렇게 저렇게 해석되는 이 말의 의미를 예전엔 잘 몰랐었다. 멀리서, 오래, 혼자서, 그동안 먹던 음식들을 떠나고 보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가. 이제까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았는가. 음식에 대한 탐구가 저절로 됐다.
혼자, 무엇을 해먹고 살아요? 집주인 닐루씨도 서른 명의 남학생들도 노상 궁금해 했다. 내가 먹었던 음식을 말해주면서, 지금 먹는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현재를 알게 되었다. 탐식과 폭식으로 울룩불룩해진 몸과 마음으로 괴롭던 사람에서 적게 먹고 천천히 먹어서 홀가분하게 정리가 된 정신과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변해갔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한국어 교재에는 한국음식문화 챕터가 있다. 조만간 한국에서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한국음식을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학생만큼이나 선생인 내게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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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기르는 나무에서 갓 따온 애플망고. 작고 당도도 높지 않지만 정말 귀중한 생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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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들어먹었다며 눈으로라도 즐기라며 보내준 치즈그라탕. 2년 동안 멀어진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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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것들을 먹는 사람이었다고 알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떡을 가르치다가 입맛을 다시면 백설기와 비슷한 ‘끼리밧’을 가지고 왔다. 과일의 종류를 가르친 다음 날이면 캐슈너트와 망고, 조그만 수박을 따 왔다. 모든 것이 작고 적었다. 맛도 소박했다. 그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음식들을 받아먹었다. 고기종류를 가르치는 날은 토론이 벌어졌다. 100% 싱할러 사람인데다가 100% 불교도인 아이들은 모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어떻게 소나 돼지를 먹어요? 긴 속눈썹을 드리운 큰 눈을 끔벅이며 백이면 백 사람이 똑같이 ‘불쌍해요.’라고 말했다. 생선과 닭고기는 먹었다. 생선은 안 불쌍해요? 닭은 죽여도 괜찮아요? 네 발 달린 생명체만 불쌍하다는 건 불공평하잖아요. 따져 물어도 요지부동이었다. 아무튼 학생들은 쪼들쪼들 말라가는 한국어 선생님을 가엾어 하면서 고기를 먹여주겠다고 집으로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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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흔한 열매, 잠부.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이 열매를 학생들이 얼마나 따다주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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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린 학생의 엄마들이 가스도 없이 코코넛 말린 연료를 때서 만들어준 요리는 한국 음식과 전혀 달랐다. 한국식 기름 듬뿍 튀김 닭, 끈끈하게 다디단 양념통닭, 야채와 버무린 찜닭, 닭 가슴살 샐러드 같은 건 언감생심. 닭고기 요리에 닭 고기조각은 다진 마늘 크기 정도의 쌀알 크기로 조그마했다. 생선 요리도 마찬가지. 섬나라인 스리랑카에 그토록 흔한 것이 생선인데도 요리에 넣은 것은 잘디잔 조각들이었다. 덩어리 통째로, 차고 넘치게 먹지 않았다. 음식을 몸에도 마음에도 냉장고에도 꽉꽉 저장하지 않았다. 그날 먹을 음식만 바로 준비해서 먹고 나머지는 어디에도 처박아두지 않고 집 앞에 마련한 작은 상에 놓아두어 새, 다람쥐, 나무가 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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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한국음식이 그리운 날이면 직접 치즈를 만들고 새우를 사와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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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권혁란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코이카 스리랑카 한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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