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18 19:08
수정 : 2018.01.18 20:01
권혁란의 스리랑카 한국어 교실
|
스리랑카 잡지 <익스플로러 스리랑카>. 한 달에 한 번 출간된다. 영어로 되어 있고 200루피. 외국인이 많이 오는 호텔, 음식점에 비치되어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성격을 볼 수 있다. 사진 권혁란
|
하리! 하리, 하리!라고 했다. 버스에 손님을 태우고 출발해도 좋다고 운전기사에게 알릴 때, 버스 차장(스리랑카 버스엔 모두 차장이 있고 전부 다 남자다)은 기사는 물론 모든 버스 승객이 다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버스 옆구리를 튕기며 소리쳤다. 그 옛날 우리나라 버스 차장의 ‘오라이’(All Right)와 같은 뜻이다. 하리, 한번만 해도 될 것을 이들은 늘 리듬을 타며 하리하리를 외쳤다. 버스 한번을 타서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하리하리를 외치는 차장의 목소리는, 편안한 안도감을 주었다. 귀청을 뚫을 만큼 큰 소리로 틀어놓은 스리랑카 노래 틈새로, 속도위반을 밥 먹듯이 해대는 총알택시보다 더 무섭게 달리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땀을 흘리는 와중에 남루한 옷차림의 차장이 외치는 하리하리는 만사 오케이, 오로지 올 라이트라는 의미로 들렸다. 곧바로 ‘하리’라는 말을 사랑하게 되었다. 시장에서 돈을 내고 계산 맞아요? 물어도 하리, 낯선 곳에 가서 무엇을 물어도 하리!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우리나라완 다르게 무슨 일을 오케이 할 때, 내가 하겠다, 네가 옳다의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다. 그것도 우리와 전혀 다른 몸짓으로, 고개를 가볍게 왼쪽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저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다 하리라고 말할 수 있지? 그 경계 없는 하리의 세계에 나는 환호하고 작약했다. 그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긍정의 고갯짓을 배우려고 2년 동안 부단히 연습했다.
‘혼다이’란 말이 가진 긍정적인 의미는 더 무궁무진하다. 날씨가 좋은 것도 혼다이, 음식 맛이 좋은 것도 혼다이, 사람이 성격이 좋은 것도 혼다이, 집안이 좋은 것도 모두 혼다이, 하나면 충분했다. ‘아주 좋다, 훌륭하다!’라는 뜻이다. 이 사람들은 한국도 무조건 ‘혼다이’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
내추럴 본 스리랑카 고기잡이 달인 아누라다푸라 사는 수지드씨. 가난하고 아픈 아이를 키우는 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하리와 혼다이와 풀루완과 까막 네해의 연속이었다. 사진 권혁란
|
‘풀루완’은 정말 가능의 세계다. ‘예스! 아이 캔(I Can)’의 무한 긍정의 말이므로, 어쩌면 이들에게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게 된다. 시험 합격할 수 있어요? 오오, 풀루완! 약속 지킬 수 있어요? 오우, 풀루완 풀루완. 이 일을 할 수 있어요? 모든 물음에 대한 대답이 다 풀루완이다. 하리와 혼다이와 풀루완을 꼭 두 번씩 연달아 말하는 이 사람들을 그대로 보면 너무나 긍정적이어서 어떤 것도 다 해낼 수 있어 보인다. 못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듯, 다 좋고, 다 할 수 있다는 허세 같은 말에 학을 뗄 만큼 덴 적도 부지기수다. 약속은 깨어질 때가 많고 좋다더니 아무 관심 없이 잊어버릴 때도 많고 할 수 있다면서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럴 때 우리는 화가 나서 묻게 된다. 하리라고 했잖아? 혼다이라고, 풀루완이라고 했잖아? 다 말뿐이잖아. 붉으락푸르락 화를 내는 우리를 대하는 이들의 자세는 이제 ‘까막 네해’로 돌아온다.
까막 네해는 ‘노 프로블럼’의 세계다. 문제없어! 걱정하지 마! 왜 화를 내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하게 까막 네해를 연발하는 사람에게 따지다 보면 사실 패배는 내 것이 된다. 하려고 했는데 못했어, 날짜를 어기긴 했지만 문제없어. 시간은 많고 인생은 이어지는데 그것들이 오늘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큰일 난 것은 아니잖아. 화를 낸다고 지나간 일이 원하던 대로 바뀌겠어요? 미래의 어떤 일이 화낸다고 바뀔 수 있겠어요? 이들의 도저한 까막 네해 앞에서 솟구친 화와 안달하는 조바심을 내려놓아야 할 사람은, 도로 나일 수밖에 없다. 하리, 혼다이, 풀루완을 말할 때 이들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다 오케이고 좋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일 뿐, 먼 미래의 일들을 앞당겨 걱정하면서 부정의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난 하리와 혼다이와 풀루완의 반대말을 알지만 사용하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었다.
|
오래 스리랑카에 살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게 되고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잘 사용하는, 무엇보다 잘 웃는 사람이 되는 복을 누렸다. 사진 권혁란
|
아무튼 이런 긍정의 표현 끝에 ‘더’만 붙이면 의문문이 된다. 하리더? 혼다이더? 까막 넷더? 플루완더? 의문사로 물어봤자 대답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다. 하리, 혼다이, 까막 네해, 오우 풀루완의 무한반복으로 갈 테니까.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좋은 것도 없는데 이 사람들이 무조건 이런 초긍정의 표현을 해대는 것은 어쩌면 뻔뻔하고 게으르고 허풍이 센 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들이 사용하는 이 긍정의 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그리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들의 ‘빅 픽처’(커다란 꿈)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스리랑카에 가면 인사말 두 개, 즉 처음 만날 때 ‘아유보완’과 감사하고 고마울 때 쓰는 ‘스뚜띠이’와 하리, 혼다이, 풀루완, 까막 네해, 네 개만 알면 된다.
이 나라 말로 배운 유일한 부정의 말은 에빠! 하나였다. 하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싫어요! 나빠요!라는 의미의 에빠를 제일 많이 사용한 것은 당연하게도 한국어 교사인 나였고, 이들에게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한국어는 ‘죽고 싶어?’ ‘정말 죽여준다’ ‘죽음이야!’ 같은 거였다. 정말 좋은 것을 표현하는데 죽음을 들먹이는 세고 거친 이 말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의미가 통하지 않았다.
권혁란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코이카 스리랑카 한국어 교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