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7.01 09:10 수정 : 2016.07.15 14:58

정여울 책과생각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정여울 책과생각
누비처네
목성균 지음/연암서가 펴냄(2010)

공전의 히트작이나 문학사의 이정표가 된 작품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꼭 ‘내 마음의 서재’에 고이 모셔두고 싶다. 바로 목성균의 수필집 <누비처네>다. 시나 소설과는 또 다른, 수필만의 오롯한 매력이 담뿍 담겨 있는 작품집이다.

첫아이 포대기로 쓴 ‘누비처네’를 삼십 년 넘도록 버리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누비처네>부터, 의사의 금연 권고를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은밀한 맞담배질’을 허락하신 장모와의 달콤한 추억을 담은 <장모님과 끽연을>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넘어갈 수 있는 수필이 없다. 오직 사실과 경험에 뿌리를 둔 수필문학의 진솔함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성취가 아닐까 싶다.

‘금연을 하지 않으면 이 심각한 위장병을 치유할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권고와 아내의 ‘게슈타포 같은 감시’를 피해, 장모님은 옥상 평상으로 사위를 불러 속곳 주머니에 고이 숨겨둔 ‘구겨진 그로리아 담뱃갑’을 내놓으신다. ‘그까짓 담배 끊어버리겠다’며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또 몰래 담배 피운 것을 들켜 상심한 사위를 애처로이 여기면서도, 몸에 해로우니 ‘딱 반 개비’만 피우라는 따스한 위로와 함께. “사위, 옥상 평상에 가 보세, 노을도 곱고 아주 시원해.” 장모님의 이 한마디는 ‘무조건 금연하라’는 의사의 충고보다도, 남편의 흡연을 셰퍼드처럼 감시하는 아내의 철통방어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대승적 금연을 가능하게 한다.

<행복한 군고구마>는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의리 때문에 군고구마를 사고파는 이들의 덧정이 넘실거린다. 추위에 덜덜 떨며 귀가할 때마다 주머니 속 손난로가 되어주던 군고구마.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께서 파시는 군고구마가 그에게는 쓸쓸한 겨울밤의 등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 아들이 나와 ‘나’에게 투덜거린다. “일찍 좀 다니세요.” “아저씨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감기 걸렸으니까 그렇죠.” 밤늦은 시간에 반드시 고구마를 사 가는 손님을 위해, 아무리 추워도, 손님이 없어도 기다려주었던 아주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아무리 힘들어도 단골에게 따끈한 군고구마를 쥐여주기 위해 야근을 마다 않는 아주머니, 다음부터는 일찌감치 군고구마를 샀다는 손님. 이 모두가 사리사욕에 물들지 않은, 정겹고 셈 바르지 못한 시절의 사람들이었다.

<누비처네>를 통해 알게 된 아름다운 우리말 중 압권은 ‘부엌궁둥이’다. 아버지께 꾸지람을 들을 때마다, 삶이 팍팍할 때마다, 의지할 공간은 부엌아궁이 근처의 바람벽, 부엌궁둥이뿐이었다. “식구들이 퇴함하듯 들로 나가고 나면 해님은 부엌궁둥이로 돌아가서 신랑 새댁 궁둥이 탐닉하듯 온종일 바람벽에 머물렀다. 동향집 부엌궁둥이는 다산한 아내의 돌아앉은 궁둥이만치나 편하고, 은근하고, 따뜻한 곳이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내게 문학 또한 그랬다. 세상에 발붙일 곳이 없을 때마다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숨어들어 겁먹은 등짝을 기댈 수 있는 곳. 작가가 30년 넘게 못 버린 아기포대기 ‘누비처네’ 또한 문학을 닮았다. 문학이 의식주를 해결해주진 않지만 ‘나다움을 길러낸 팔 할’은 문학의 힘이다. 처음부터 매끈하게 마름질된 하나의 완성된 천이 아니라, 조각조각 기우고 간신히 이어붙인 알록달록한 누비처네처럼, 문학은 내 깊은 상처의 마디마디를 어여쁘게 바느질해주었다.

문학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