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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01 19:16 수정 : 2016.09.01 19:57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산에서 살다
최성현 지음/조화로운삶(2006)

독서는 결국 자신의 결핍을 무의식적으로 채우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언젠가부터 나는 귀농이나 귀촌, 생태적인 삶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현재의 결핍’을 상상적으로 채워보는 대리만족을 추구하게 되었다. ‘꼭 찾아 읽겠다’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도시를 떠난 삶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목마르게 찾고 있었다. 몸은 아파트에 갇혀 살면서, 마음만은 월든 못지않은 거대한 상상의 숲에 가 있었다.

내가 도시와 아파트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편리함이라는 덫, 게으름이라는 달콤함에 갇혀버린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다 문득 이 책을 뽑아들게 되었다.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고, 땅을 갈거나 잡초도 뽑지 않는 완전자연농법의 바이블인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번역한 최성현 작가는 오래전 내게 ‘산에서 혼자 산다’는 저자 프로필로 엄청난 충격을 준 분이었다. ‘산에서 혼자 산다’니, 그보다 더 한 사람의 인생을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산에서 살다>는 스스로 직접 가꾼 땅에서 하루 네 시간 정도만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연과 함께하거나 공부에 매진하는 ‘산사람’의 인생을 살아온 저자의 경험을 집약한 책이다. 아무리 헐벗은 민둥산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한 해 한 해 나무와 풀을 심어가면 언젠가는 살아 있는 낙원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난다면, 밥맛이 없다면, 잠을 푹 잘 수 없다면 땅과의 거리를 살펴볼 일이다.” 땅과 멀어질수록, 우리는 불안해진다. 콘크리트벽에 갇혀 있을수록, 아프고 외로워진다. “가정이란 집(家)과 뜰(庭)로 이루어진 것이란 것을 알았을 때 내 영혼은 노래하기 시작했다.” 미야사코 지즈루의 문장을 이 책에서 발견한 순간, 내 영혼은 탄식하기 시작했다. 가정이란 집과 뜰로 이루어지는데, 나는 뜰을 잃어버렸구나. 내 한 몸 편안하게 보살피는 집은 있지만, 꽃과 나무, 동물과 곤충들과 함께하며 다른 존재와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뜰은 없구나. 그렇다면 도시인이란 뜨락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하여 진정 완전한 가정의 품새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까. 문명의 이기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연과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는 점점 성마르고 각박해져가는 것은 아닌가.

이제야 내 오랜 역마살의 기원이 밝혀진 듯했다. 나는 뜨락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을 때는 작은 집 안에서도 자연과 함께 살 수 있었다. 이제 자연은 일부러 찾아다녀야 하는 것, 애써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고 말았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집’이라는 개념에 갇히면 아주 작은 불편함조차 견딜 수 없게 된다. 층간소음은 물론 아주 작은 날벌레까지도, ‘나의 편안함’을 방해하는 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뜰이란 식물이나 동물과 만나는 장소다. 우리는 뜰에서 꽃과 나무를 심어 가꾸고 동물들과 함께 살며 배우는 공생의 기쁨을 잃어버림으로써 ‘나와 다른 존재와 함께하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산에서 혼자 살던 최성현 작가는 이제 가정을 이루어 ‘삼대가 함께 사는 귀농’을 실천하고 계신다고 한다. 나와 전혀 다른 존재와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길, 그것이 우리 도시인이 잃어버린 마음의 뜨락을 되찾는 길이 아닐까.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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