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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01 19:36 수정 : 2016.12.01 20:08

정여울의 내 마음속 도서관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을유문화사(2016)

끔찍한 사건이 터졌을 때, 피해자에게 ‘괜찮아요?’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누가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사람들은 ‘괜찮냐’고 한다. 그들은 결코 괜찮지 않다. 자신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고 직후엔 괜찮다가 한참 뒤에 심각한 병을 앓는 이들도 많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 아픈 마음이 몸에 끼친 영향, 그 아픈 마음이 삶 전체에 드리운 그늘을 ‘큰 그림’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인생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더 이상 과거에 짓눌리지 않고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몸은 기억한다>는 아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병으로조차 인식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 증상의 심각함을 깨달은 정신과의사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1970년대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구해왔고, 트라우마가 인간의 신체에 실질적으로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는 것을 밝혀낸다. 트라우마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활성화시키고, 뇌의 경고 시스템을 과민하게 작동시킨다. 보통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은 ‘비상사태’로 인지하고, 극도로 불안한 행동을 보인다. 예컨대 성폭력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가해자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사람만 봐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잉크 방울을 무질서하게 뿌려놓고 그것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물어보는 로르샤흐 검사는 트라우마 환자들의 상태를 알아보는 데 효과적이다. 베트남 참전 군인 빌은 로르샤흐 검사에서 어떤 카드를 보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이건 베트남에서 제가 폭파당하는 걸 목격했던 아이의 모습입니다. 여기 중간에, 시커멓게 불탄 살점과 상처가 보이시죠. 피가 온 사방에 튀고 있군요.” 어떤 군인은 이렇게 말했다. “박격포에 맞아 몸이 터져 버린 내 친구 짐의 창자군요.” “점심을 먹는 동안 포격을 받았는데, 그때 친구 대니의 머리가 날아갔어요. 이건 그 친구의 목입니다.” 트라우마는 이렇듯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부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 해법 중에서 나는 ‘낭독 치료’에 특히 감동을 받았다. 2008년 샌디에이고에서 해군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이아스> 낭독회를 열었는데, 무려 2500년 전에 나온 이 작품에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는 군인들이 엄청난 호응을 보였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군인들의 자살률이 치솟고 있는 미국에서, 2500년 전의 전쟁이야기 <아이아스>가 ‘바로 내 이야기처럼’ 군인들의 가슴을 울린 것이다. 군인들은 낭독회 이후 서로 아픔을 털어놓으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트라우마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아픔을 앓고 있는 사람이 2500년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상처받은 군인들의 가슴을 움직였던 것이다. 우리의 상처 또한 그렇지 않을까.

‘나’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가 될 때, 트라우마는 더 이상 고립된 증상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공동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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