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부수적 피해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민음사(2013) 촛불집회의 함성을 들으며 주말을 보내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 가슴에 불도장처럼 박힌 현수막 문구가 있다. “엄마가 말은 못 사줘도 좋은 나라는 물려줄게.” 그 순간, 아이가 없는 나조차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수억짜리 말을 사주지 못해 스스로를 ‘흙수저’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작은 촛불 하나를 켜는 마음. 촛불이 전국으로, 전세계의 동포들에게까지 번지는 속도에 비해 세상이 바뀌는 속도는 너무도 느리지만, 이 기나긴 촛불정국이 정치권보다도 우리 자신을 좀 더 당당하고, 좀 더 용감한 시민들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 소중하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부수적 피해>를 읽으며, 이 거대한 촛불정국에서도 그야말로 꿋꿋이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정치인들이 ‘과연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의 해답을 찾았다.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는 원래 군사용어로 군사 활동시 불가피하게 따르는 민간인 피해를 이른다. 바우만은 이 군사용어를 현대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는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 주말을 반납하고 촛불을 들게 한 바로 그 권력자들이 이 사태를 ‘부수적 피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주로 가난한 흑인들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 확인되자, 매사추세츠대학 영문학과 교수 마틴 에스파다는 말했다. “가난은 위험하다. 흑인인 것은 위험하다. 라티노인 것은 위험하다.” 권력자들에게는 우리 모두의 이 끔찍한 고통조차도 ‘부수적 피해’에 불과한 것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야, 억울하면 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했을 때 학생들의 가슴이 찢어져 회복 불가능한 트라우마가 되어도, 최순실-정유라 모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 땅의 젊은이들이 ‘우린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뼈아픈 자각에 괴로워해도, 그들에게는 이 모든 참혹한 고통이 ‘부수적 피해’에 불과한 것이다. ‘부수적 피해’라는 용어 자체에 권력자의 시선이 깃들어 있다. 부수적 피해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끌어오는 비유는 ‘달걀을 깨뜨려야 오믈렛을 만들 수 있다’는 문장이다. 부수적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달걀 껍질’에 불과하고, 달걀을 깨뜨려서 오믈렛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은 ‘권력의 미식가’가 되어 그들 마음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를 마치고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한 할아버지의 쓸쓸한 혼잣말을 들었다. “아이고, 박근혜 몰아내려다가 내 허리 작살나겄어.” 허리가 많이 아프셨는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셨지만, 말끝에는 올바르게 살아오신 노인의 꼿꼿한 자존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힘든데도 촛불을 들고 나왔으니, 손자들에겐 덜 부끄러울 것 같아.’ 이런 할아버지의 속엣말이 들리는 듯했다. 이 기나긴 촛불 정국에서 딱 하나 다행인 것은, 촛불의 함성이 권력자들이 가진 가장 추악한 면을 끌어내는 반면, 우리 시민들이 가진 가장 밝고 강인하고 끈질긴 에너지를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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