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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19 18:46 수정 : 2017.01.19 18:55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마흔통
마크 라이스-옥슬리 지음, 박명준·안병률 옮김/북인더갭(2016)

‘인생에 이제 새로운 것은 없겠구나’ 하는 절망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대개 마흔쯤 되면 이제 새로운 인생의 패턴을 만들기가 어려워진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경험적 패턴이 있기 마련인데, 어느 순간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간신히 만들어온 어떤 패턴의 반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험에서조차 패턴이 있다. 상실과 극복의 패턴이. 싱그러운 우연이 내게 선물처럼 찾아와주길 기다리는 천진함이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 유명한 사람들은 더 유명해지려고 하고, 돈 많은 사람은 더 많아지려 하고. 전부 다 ‘조금 더, 조금 더’ 원하다가 생을 다 허비하는 것 같다. 이게 전부인가. 인생이라는 것이 이게 전부란 말인가.

<마흔통>은 바로 이런 중년의 권태와 우울증을 극심하게 겪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가디언> 기자 출신의 작가 마크 라이스-옥슬리는 잘 나가는 언론인이었고, 행복한 가족이 있었으며,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자신 앞에 찾아온 중년의 위기, 우울증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항불안제 로라제팜에 중독되어버렸고, 그렇게 좋아하던 책을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어 난독증 상태가 되었으며, 평범한 일상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감이 심해졌다. 우울증에 빠진 중년의 남성들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나는 우울증을 ‘보이지 않는 모욕’이라고 불러. 아무도 그 병을 볼 수 없지. 그건 다리가 부러졌다거나 머리에 붕대를 감은 게 아니니까. 마치 휴가를 얻은 사기꾼 같은 느낌이랄까.” “삶이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빙빙 도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

저자는 상담치료를 받고, ‘마음챙김 훈련’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우울증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약을 쓰면 증상은 개선되지만 약에 중독될 위험이 있다. 그에 비해 마음챙김은 느리고 완곡한 치유다. 느린 대신 부작용이 없다. 마음챙김은 단지 욕심을 줄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욕심의 빛깔과 향기를 음미하고 그것이 내게 좋은 욕심인지 내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욕심인지 음미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탐욕이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더욱 도움이 되는 더 괜찮은 희망을, 욕심 대신 갖는 것이다. 저자는 마음챙김의 효과를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서두르다가 세월을 잃었다. 마음챙김은 강력한 해결책이다. 마음챙김은 다음 순간으로 서둘러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행복에 머무르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의 가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왜 건강하지 않지?’라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건강했던 건 엄청난 행운’임을 깨닫는 것. 내게 남은 이만큼의 건강, 이만큼의 행운, 이만큼의 인연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는 과정에서 그는 우울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어쩌면 우울증은 단지 ‘중년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전체성을 깨닫는 기회가 아닐까. 삶의 전체성이란 인생의 단물만 쏙 빼먹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쓴물도 삶의 어엿한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권태와 우울을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심각한 감정의 늪 속에 흠뻑 빠져들 필요가 있다. 건강과 행복을 당연시하고, ‘내 삶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대하는 이기심과 작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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