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접촉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김종인 옮김/황소자리(2016) 인간은 왜 ‘당연한 사실들’조차도 굳이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할까. 예컨대 살을 맞부딪는 접촉이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온갖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마음이 놓이는 이유는, 점점 쏟아지는 타인의 주장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서이기도 하고, 접촉이 초래하는 ‘만약의 위험’을 지나치게 두려워해서이기도 하다. 어딜 가나 손세정제가 놓여 있고, 악수조차 꺼리는 사람들의 지나친 위생관념이 접촉에 대한 두려움을 가속화시킨다. 나는 <접촉>이라는 책을 선택하면서 나 또한 ‘접촉에 대한 그리움’과 ‘접촉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양가감정을 지녔음을 깨달았다. <접촉>에 따르면 꼭 이성간의 애정을 전제로 한 접촉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접촉이 몸에 좋다. 촉각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기에 말을 배우기 전의 아기들에게 가장 중요한 소통의 미디어는 바로 접촉이다. ‘커들 파티(cuddle party)’라는 독특한 문화도 있는데, 다만 서로를 정성껏 만져주기만 하되 절대 성적인 행위나 데이트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언뜻 보면 상업적으로 보이지만, 외로움에 심신의 건강을 더욱 빠른 속도로 잃어가는 도시인의 현명한 집단무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 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의 접촉도 중요하다. 예컨대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면접을 보는 것과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면접을 보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차가운 음료를 마신 면접관은 상대방의 단점을 냉정하게 파악해서 점수를 인색하게 주었고, 따뜻한 음료를 마신 면접관은 상대방에게 훨씬 너그럽고 여유 있는 관점을 유지해 좋은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화해가 필요할 땐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좋고, 사무실 의자도 딱딱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안락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업무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셈이다. 마사지가 거의 모든 통증에 효과를 보이는 것도 접촉의 힘이고, 아기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성장과 발육에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며, 명의는 손가락으로 환자의 몸을 만지는 촉진만으로도 환자의 고통을 잡아낸다는 속설도 틀린 것이 아니다. 쌍둥이 조산아가 따로따로 인큐베이터에 있는 것보다는 같은 인큐베이터에서 서로를 만져주고 안아주어야 훨씬 성장이 빠르다는 연구도 있다. 아이를 울게 내버려두는 것은 결코 좋은 훈육이 아니며, 어떤 방식으로든 살과 살이 맞닿는 ‘접촉’을 통해 ‘나는 버려지지 않았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란다. 스포츠경기에서도 서로를 많이 다독여주고,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는 팀이 더욱 승리의 확률이 높다. 이해는 느낌보다 항상 느리지 않은가.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우리 가슴에 영원히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존경과 우정으로 남는 사람도 있다.” 접촉에 인색해진 현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조건도, 의심도, 슬픔도 없는 접촉’을 그리워한다. 잊지 말자. 촉각은 인간에게서 발달하는 첫 번째 감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살아있음의 증명이며 ‘아직 우리는 괜찮다’는 사실의 생생한 증명이라는 것을.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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