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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14 18:50 수정 : 2017.09.14 19:22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아누 파르타넨 지음, 노태복 옮김/원더박스(2017)

북유럽식 행복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에게는 중요한 관점의 변화가 찾아왔다. 행복을 ‘외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 자율’의 문제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예컨대 음식을 통해 누리는 기쁨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이름난 맛집이나 멋진 레스토랑에서 느끼는 ‘완성된 맛’과 ‘최고의 서비스’를 향한 동경보다는 ‘서툴고 어설프더라도, 내가 집에서 뚝딱뚝딱 만드는 요리’를 즐기는 기쁨이 더 오래, 더 자주 지속가능한 행복의 가능성이 아닐까. 진정한 행복은 ‘탁월함’이나 ‘여유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율성의 믿음으로부터 우러나온다.

아누 파르타넨은 핀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가치관이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어린 시절부터 체득한 핀란드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대학등록금과 생활비와 보험료까지 부모에게 의존하고, 중년이 되어서는 늙고 병든 부모님을 보살피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가족 간의 절대적 의존 상태는 안정감과 편안함보다는 심각한 부담감과 장기적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서 개인의 능력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는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는 불행하고 의존적인 개인을 양산해낸다.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그린 미국드라마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책임, 헌신’(commitment)인데 남자들이 바로 그 여성들의 소원을 지켜줄 수 없는 이유는 ‘욕망, 충동’(libido)때문이라는 해석도 흥미로웠다. 책임과 헌신을 요구하는 여성과 불륜조차도 꺼리지 않는 남성의 대립이야말로 미국 드라마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뿌리 깊은 남녀차별의 시선이다. 저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적한다. 미국의 현실에서 결혼이란 일종의 금융합병 행위라고. 미 국세청은 부부가 소득을 합산하여 하나의 단위로 소득신고를 하면 혜택을 준다. 부부재산을 한묶음으로 취급함으로써 미 국세청이 권장하는 금융합병은 배우자 사이의 경제적 의존을 한층 심화시킨다. 가족간의 의존을 비롯하여 모든 서비스에 대한 개인의 의존을 심화시키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창조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긍지와 자존감을 약화시킬 것이며,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북유럽 라이프의 핵심 개념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가치관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몸과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이라 부른다.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는 삶, 어떤 서비스와 기업에도 자신의 행복을 의탁하지 않는 삶, 그것이야말로 나의 행복과 나의 사랑을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북유럽 라이프의 시작이자 끝이다. 행복은 넘쳐나는 돈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계의 적극적인 관계맺음에서 우러나온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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