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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9 19:56 수정 : 2017.10.19 20:46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
데이먼 영 지음, 서정아 옮김/이론과실천(2016)

가진 적도 없고,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가능성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꼭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 내게는 그런 불가능한 갈망의 대상이 바로 아름다운 정원이다. 여행매니아가 되고 나서는 정원을 향한 열병이 더 심해졌다. 아름다운 도시에는 꼭 그에 걸맞은 정원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의 수많은 정원들, 헤르만 헤세가 직접 가꾼 몬타뇰라의 정원, 모네의 안식처 지베르니에 있는 화가의 정원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장소들은 그에 꼭 어울리는 최고의 정원으로 기억되었다.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는 프리드리히 니체, 장 자크 루소, 제인 오스틴,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와 레너드 울프 부부, 조지 오웰,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 ‘정원을 사랑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소담스레 풀어놓는다. 디킨슨은 자신의 시 자체가 머리속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생각했다. 루소는 정원가꾸기의 즐거움을 통해 자신을 비난하는 수많은 논객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내면의 안식처를 찾았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이 가꾸는 정원을 거닐 때만큼은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심한 천식을 앓았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 은둔하며 글을 썼던 프루스트는 일본산 분재를 수집하며 자신의 방 안에 광활한 숲을 초대한다. 그렇게 자연의 경이와 신비를 자신의 집 정원에서 얻는 데 성공했던 수많은 철학자, 작가,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정원을 무한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정원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방문을 살짝 열어놓아 장례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애도를 대신했던 이 은둔형 예술가가 온 마음을 다해 기꺼이 손발에 흙을 묻혀가며 일한 공간이 바로 정원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인간혐오증을 앓고 있거나 사회부적응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정원을 가꾸며 꽃과 나무와 나누는 대화만으로도, 만남 대신 수많은 손편지를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회적 관계에 휘둘려 ‘정말 나에게 소중한 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여유가 없는 현대인이야말로 소셜 네트워크라는 갑갑한 그물망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정원을 언젠가는 가져야만 하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은 내 안의 뿌리 깊은 소유욕이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시민의 정원’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것도 정원을 가꾸는 기쁨 못지않다. 정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점유하는 기쁨, 정원을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가꾸는 노동과 책임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정원바라기’에 결여된 관점이었다. 소유할 수 없다 해도, 직접 가꿀 수 없다 해도, 정원이 좋다. ‘정원’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내가 보고 듣고 체험한 온갖 정원의 유토피아적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쏟아져나온다. 내게 정원은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에 굳건히 뿌리내린, 내면의 유토피아다. 당장 가질 수는 없지만, 알고 보니 이미 내 마음 안에 성큼 자리하고 있다. 내가 본 모든 정원들이 일종의 환상적 콜라주를 이루어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또 하나의 월든으로 내면의 정원조경이 완성되었다. 그 아름다운 내면의 월든 속으로, 삶에 지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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