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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4 19:37 수정 : 2018.06.14 20:03

[책과 문화]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민음사(2018)

오래전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보다가 “아이들을 지켜주는 신은 따로 있다”는 대사를 들으며 가슴이 시려왔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신이 따로 있어, 세상 모든 배고프고 아픈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직도 지구상에는 굶주리는 아이들, 방치와 학대 속에 고통 받는 아이들이 많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산업혁명 초기 영국사회가 자랑하던 화려한 번영의 그림자, 런던 뒷골목의 빈민가에서 끊임없이 버려지고 납치되고 학대받은 고아소년의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다.

혹독한 가난 속에서 자란 디킨스 자신이 겪은 생존의 고투와 기자로서의 풍부한 취재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소설에서 디킨스는 “날쌘 꾀돌이의 외투에 난 구멍 하나도, 낸시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남은 머리 마는 종잇조각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런 것들을 보는 걸 견딜 수 없어 하는 우아한 취향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선언도 잊지 않는다. 올리버의 첫 탄생 장면부터 고난은 예고되었다. 어머니는 올리버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나고, 구빈원 사람들은 올리버를 귀찮은 짐짝처럼 취급하며 좀처럼 사랑을 베풀어주지 않는다.

올리버는 배급규정대로 준 저녁을 받아먹고 난 뒤에 ‘조금 더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고초를 겪는다. 올리버가 겪은 온갖 고통은 1834년 영국의 빈민구제법 개정 이후에 일어난 구조적인 병폐와 맞물려 있었다. 공리주의자들은 ‘신(新)구빈법’으로 빈민계층의 확대를 막으려 했지만, 그들에게는 빈민의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었고, 오직 빈민의 ‘제거’에만 관심이 있었다. 빈민층의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남편과 아내를 격리수용했고, 구빈원에 의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수용자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것 따위가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가난구제 조치였다. 디킨스는 바로 이런 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약자를 더욱 약하게, 강자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사회악임을 온몸으로 고발했던 것이다.

내 눈에 비친 <올리버 트위스트>의 아름다움은 이런 날카로운 사회풍자를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럼에도 삶이 얼마나 살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그토록 힘겹게 거쳐 온 세월이 모두 의미있고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들의 아름다움. 자기가 죽은 뒤 누군가가 올리버에게 글을 남겨주기를 바라는 꼬마 딕의 간절한 마음이 가슴을 울린다. “제 간절한 사랑을 불쌍한 올리버 트위스트 형에게 남겨주고 싶어요. 그래서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어두운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형을 생각하며 혼자 앉아서 많이 울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자신이 더 굶주리고 병들었으면서도, 홀로 외롭게 세상을 헤매고 있을 올리버를 걱정하는 꼬마 딕의 순수한 사랑. 올리버와 딕은 구빈원 시절 서로를 위해주며 의지했고, 그 유일한 따스함의 기억이 외롭고 힘들 때마다 어둠을 밝히는 영혼의 등대가 되어준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한 아이가 오히려 어른들에게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야기다. 아무도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에서도, 자신들끼리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예전보다 더 커다란 울림으로 가슴을 두드린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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