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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1 19:35 수정 : 2018.10.11 23:21

[책과 생각]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뮤티컬 <마틸다>의 공연 포스터. 신시컴퍼니 제공
마틸다
로알드 달 지음, 김난령 옮김/시공주니어(2018)

아주 어린 시절, 우리에게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더라면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에게 어떤 폭언도 하지 않고,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너는 나처럼 살면 안 된다’는 가슴 아픈 조언도 하지 않는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거침없고, 원한 없고, 후회 또한 덜하지 않았을까.

로알드 달의 천재적인 캐릭터 마틸다는 정말 그런 선택을 한다.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버릴 권리’를 이 천재 소녀 마틸다는 거침없이 실현한다. 마틸다는 학대받는 어린이들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부모에 대한 증오를 대변하는 살아 있는 증인이다. 마틸다는 정말로 자신을 괴롭히는 부모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양육권자로 선택한다. 우리가 내심 표현하지 못하고 숨기는 부모에 대한 원망, 부모가 나에게 잘못을 해도 ‘나를 키워주셨으니까’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분노까지, 마틸다는 거침없이 표현한다.

마틸다는 다섯 살 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읽었으며, 가난하지만 지혜롭고 총명한 하니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따스한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 “엄마는 제가 뭘 하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요”라는 마틸다의 고백은 읽을 때마다 눈물겹다. 마틸다는 책을 읽음으로써 세상 모든 슬픔을 잊고, 책을 친구로 삼음으로써 외로움을 달래며, 책 속의 지혜를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를 이겨낸다. 트런치불 교장선생님의 독재로 얼룩진 학교에서 마틸다는 자신의 또다른 재능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손을 대지 않고도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초능력이다. 마침내 이 초능력은 마틸다보다 더 심하게 학대받으며 자라난 또 하나의 피해자, 하니 선생님을 교장선생님의 폭력과 압제로부터 구해낼 수 있게 만든다.

뮤티컬 <마틸다>의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훔친 자동차의 번호판을 몰래 바꾸어 버젓이 중고차시장에 내놓아 떼돈을 번 아버지의 사기극이 들통 날 위기에 처하자 부모는 국외 도피를 결심하고, 마틸다는 겨우 다섯 살에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마틸다는 하니 선생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저는 여기서 선생님과 살고 싶어요. 제발 여기서 선생님과 살게 해주세요!” 마틸다가 친부모가 아닌 하니를 보호자로 선택하는 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마틸다의 부모가 딸이 자신들이 아닌 타인을 선택하는 것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마틸다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책 읽는 소녀 영웅 마틸다의 유쾌한 복수극, 그것은 여전히 아동학대가 버젓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현대사회를 향해 던지는 촌철살인의 독립선언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일지라도,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사탕발림으로 당신을 향한 모든 억지와 강요와 폭력을 정당화한다면, 분명히 저항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바로 그런 부모들의 무시무시한 정신적 통제 때문에 진정한 영혼의 독립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틸다, 그 이름은 ‘나를 키워준 부모이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희망과 용기의 시한폭탄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향해 꾸역꾸역 ‘그래도 훌륭한 자식’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간힘을 벗어던지자. 그러면 비로소 나 자신의 삶을 위해 거침없이 나아갈 용기가 샘솟기 시작할 터이니.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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