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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9 06:00 수정 : 2018.11.12 13:47

[책과 생각] 정여울의 내 마음속 도서관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민음사(2008)

‘중뿔나게 행동하지 마라’, ‘남들 사는 것처럼은 살아봐야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말들은 ‘사회화’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것인지를 증언한다. 중뿔난 행동은 그 사람의 자유를 향한 목마름 때문일 수 있고, 남들처럼 못 사는 것은 남다른 소신의 표현일 수 있으며, 모가 나서 정을 맞는 것은 그 사람의 못 말리는 창조성일 수도 있다. 개인의 자율과 창조성을 허락해주는 사회라면 추석과 설 연휴 때마다 단지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언제 할 거냐’, ‘취직은 어디로 했냐’, ‘둘째는 언제 가질 거냐’라는 식의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일어날 리 없다.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를 읽을 때마다 억압적인 집단이 자유로운 개인을 배제하는 방식이 얼마나 뿌리깊은 인류의 악습인지를 깨닫게 된다. 1870년대 뉴욕, 그곳은 유럽의 상류사회의 복사판이면서 동시에 ‘유럽의 귀족을 흉내내도 그들 자체는 될 수 없는 자신들’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자화자찬에 빠진 속물들의 천국이다. 메이 웰렌드과 뉴랜드 아처는 그런 뉴욕의 상류층이 키워낸 최고의 엘리트들이며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이다. 유럽에서 온갖 진귀한 보석과 화려한 드레스에 둘러싸여 살았지만 남편의 상습적인 불륜과 가정에 대한 무관심에 절망한 엘렌 올렌스카 백작 부인은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와 ‘자유’를 얻고 싶어한다.

모두가 자신을 반겨줄 거라고 믿었던 엘렌은 ‘고향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처참하게 깨닫는다. 그녀의 환영 만찬에 초대된 모든 사람들이 온갖 핑계를 둘러대며 의도적으로 불참했던 것이다. 순수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벽창호인 메이와 약혼한 뉴랜드는 자신이 만났던 그 모든 귀족 여인들과는 전혀 다른 자유의 향기를 뿜어내는 엘렌에게 매혹된다. 사람들은 엘렌이 ‘왜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수군대지만, 뉴랜드는 엘렌이 빠져나온 지옥의 처참함을 이해하기에 그녀에게 ‘제발 유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부탁할 만큼 그녀의 아픔에 공감한다.

당시 뉴욕에서 귀족가문의 여성이 자발적으로 이혼을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기였다. 일단 경제적인 자립이 쉽지 않았고, 더 무서운 것은 타인의 질시와 눈총이었다. 어떻게든 ‘자유’와 ‘자립’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엘렌에게 돌아오는 것은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는 평판과 ‘이제는 미국인이 될 수 없는 어중간한 유럽의 보헤미안’이라는 따가운 시선이었다. 뉴랜드는 엘렌의 그 ‘이방인다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순수’조차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관습과 전통을 깨고 메이와의 약혼을 무효로 할 만큼 용감하지 못했다. 그는 여자들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우리 남자들만큼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엘렌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사랑을 깨닫는 순간 ‘이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한 엘렌의 외침은 언제 다시 읽어도 가슴 시리다. “나는 당신을 포기해야만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 민주화되어도 개개인의 사유가 민주화되는 것은 요원한 일 같다. 우리는 이제 더 창조적이고, 더 예민하며, 더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더 차별받는 세상을 끝장내야 하지 않을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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