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02 19:43
수정 : 2017.11.02 20:28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알록달록 조잡한 그림이 그려진 어린이 열차가 출발했다. 잠시 멀어졌다, 돌아와, 내가 있는 자리를 지나갈 때면 딸은 얇은 손목을 날려버릴 기세로 손을 흔들었다. 자신의 모험과 귀향을 목격해 달라는 딸의 열광적인 태도에 부응하기 위해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10초 만에 다시 볼 딸의 얼굴에 반가움을 표하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엄마 여?어. 엄마 좀 봐. 잘 다녀와. 안녕!”
어린이 열차 정거장을 둘러싼 부모들은 하모니를 잊은 합창단처럼 아이들의 이름을 목청껏, 제각각의 음에 실어 불렀다. 아이들을 실은 열차가 화성으로 떠나는 우주선이라도 된다는 듯이 비슷한 기념사진을 수도 없이 찍었다. 수십 장의 사진 중 몇 장은 아이의 표정을 생생히 담고 있을 것이고, 부모들에게, 나에겐 그 사진이 중요했다.
지금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열차를 탄 아이지만, 언젠가 내가 모르는 곳으로 떠날 열차를 탈 테니까. 지금은 당연한 듯 돌아와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아이지만, 언젠가 내가 없는 곳에서 더 자신답게 살아갈 테니까. 그때도 아이는 지금처럼 손을 흔들어 줄까? 내가 있는 곳으로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내가 같은 자리에 서 있기만 하면 우리들은 영원히 함께일 거라고 약속해 줄까?
“남편이랑 헤어지는 것보다 아이가 독립해서 나가는 게 훨씬 더 힘들어요.”
성인 자녀를 둔 여성에게 그런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아렸다. 딸 없는 외출의 홀가분함이 돌연 쓸쓸함으로 바뀌었다. 서둘러 독립하고 싶어 하거나 부모와 거리를 두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아이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감정인지 체험했기에 ‘내 딸은 늘 내 곁에 있을 걸요. 외로울 일 없어요’ 허풍 칠 수 없었다.
무진장 어려운 인생의 숙제. ‘아이가 있으니까, 아이가 없는 삶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것.’ 나는 가끔 두렵다. 빈 둥지를 지키는 어미새의 고독으로 딸을 질식시키거나, 엄마로 살기 위해 억누른 욕망을 담보로 딸에게 끊임없는 인정을 요구할까 봐 무섭다. 남겨진 엄마가 아닌 떠나는 엄마가 되어 아이와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지만, 당장은 나 자신을 잊지 않는 일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나나 너나 늘 같은 자리에 머물 수 없어. 여기 아닌 곳도 괜찮으니까 삶의 어디쯤에서 꼭 만나자.”
충분히 쿨한 엄마의 대사. 다행히 연습할 시간은 많다. 아직은 서로를 배우는 시기다. 어린이 열차는 세 번 돌고 딸은 언제나 손을 흔든다. 당연한 장소에 돌아온 자신에게, 그곳에 선 나에게, 자꾸만 다시 만날 미숙한 우리를 향해.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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