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16 19:38
수정 : 2017.11.16 20:27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딸의 입가엔 가족들만 아는 보조개가 있다. 보조개를 보조개라고 부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바늘구멍만큼 작은데다 웃음 주름 속에 안겨 있기 때문에 ‘저것이 정말 보조개냐?’ 가족들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보조개치곤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내 주장을 듣고 아빠는 ‘크든 작든 저것은 보조개다.’ 반박했다. 전 남편도 나도 보조개가 없는데 어찌 딸에게 보조개가 있을 수 있냐는 질문에는
“주름 때문에 안 보이지만 나도 한때는 보조개가 있었어. 작은 보조개였지.”
아빠는 외손녀에게 뭔가 대단한 것을 물려줬다는 듯이 흐뭇해하고 있었다. 상당히 미심쩍은 근거였지만 나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딸의 친가 가족들에게 보조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홀로 조용히 추측했다.
“내가 애한테 마이클 잭슨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더니 갑자기 막 희한한 춤을 추더라고!”
엄마는 아이가 춤추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흥분했다. 취향도 유전이라는 듯, 고이 간직한 팬심의 대를 잇는 데 성공한 것처럼 기뻐했다. 손녀의 어색한 춤사위에서 마이클 잭슨의 모습, 혹은 숨겨둔 춤의 열정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교집합 열정이 낳은 강렬한 유대감. 엄마는 아이가 춤추는 동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봤다. 나는 딸이 마이클 잭슨이 아닌 뽀로로를 보고도 비슷한 춤을 춘다는 것을 알았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딸이 그림을 그리는 대신 크레파스 부수기에 열중할 때, 나는 섭섭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나마 유용한 나의 재능이 딸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허전했다. 그러던 딸이 처음으로 눈, 코, 입이 등장하는 초상화를 완성하자 나는 안도했다. ‘네가 내 딸 맞구나! 드디어 그림에 재능을 보이다니!’ 네 살 된 아이들이 딸과 비슷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감개무량함은 가시지 않았다. 어쨌든 그림을 그리긴 하니까….
햇빛을 보면 고개를 돌리고 시도 때도 없이 눈을 비비던 딸은 병원에서 안검내반이라 진단받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아래 속눈썹이 각막을 찌르는 증상은 내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하필 안검내반을 닮다니…. 나와 똑같은 불편함을 가진 딸에게 미안하여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무사히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명랑함은 병가를 내지 않는다’는 태도를 유지해서 가족 모두가 감탄했다. 허나 이번에는 단 한 사람도 자신을 닮아 그렇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딸을 가장 딸답게 만드는 특징은 유전된 무엇이 아닌 그녀만의 쾌활함이었다.
가족들이 자꾸 서로를 살피며 무엇이 닮았는가 묻는 이유는,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좋은 점, 나쁜 점, 우리가 공유하는 신체적 특징과 기질을 분석하며 가족의 연결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이 유전에 관한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딸은 희한한 춤을 춘다. 개성 강한 가족들 모두 모아 한데 묶으려고 저만의 동작으로 날렵히 몸을 흔든다.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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