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30 19:49
수정 : 2017.11.30 20:49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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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정새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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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전남편에게 받는 딸의 양육비 20만원. 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매번 안심하고, 또 안심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어떤 감정에 무게를 실어줘야 할지 모르는 채로, 나는 수많은 질문들에 둘러싸인다.
“한국에서 이혼하고 양육비 안 주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양육비 준다는 거 자체가 아주 나쁜 아빠는 아니라는 거지.”
누군가의 말처럼 전남편은 아주 나쁘지 않은, 반올림하여 ‘좋은’ 아빠인지도 모른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이혼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본다. 친권, 양육권만 준다면 위자료도 양육비도 필요 없다고 선언한 건 나였다. 어쩌면 어리숙한 대처에 비해 꽤 괜찮은 금액을 받고 있는 거 아닐까? 소모적인 부부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이성을 지배했던 시기, 법원에서 최저 양육비라도 받아야 한다는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돈도 못 받지 않았을까? 합의된 양육비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니, 금액이 얼마든 매달 양육비를 받는 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닐까? 그런데 왜 나는 감지덕지한 20만원을 받고도 때때로 화가 나는 걸까?
힘들지만, 전남편의 입장도 상상해 본다. 위자료도 양육비도 필요 없다고 했던 내가 최저 양육비는 받아야겠다고 하자 그는 발끈했었다. ‘형편이 나아지면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달라.’ 이상적인 약속이 어그러진 것에 대해 불만이 생겼을 것이다. 좋게 생각하자면, 아이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일정 액수로 고정되는 것이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돈 많이 벌면 더 많이 주고 싶어서…. 그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일관성 없는 나의 태도에 화가 났을 수도 있다. 험하게 넘겨짚자면 외가에 얹혀살 딸이 배를 곯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서, 나의 대한 미움 때문에 돈이 아까웠을 수도 있다.
법정에 선 그의 진실이 무엇이었든 지금의 그는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고 있다. 나는 사람들 말처럼, 그가 20만원이라는 돈의 부성애를 꼬박꼬박 입금하는 것에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혼한 뒤 아이를 소홀히 대하는 남자들도 많다던데 적어도 전남편은 아이를 자주 만나고 싶어 하니까. 사실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 아닐까? 전남편이 자신의 혈육을 잊지 않은 것도 감사! 비정하지 않은 것도 감사! 최저 금액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감사!
나는 감사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의 책임, 최저의 금액, 최악이 아닌 것을 이유로 고마워하고 싶지 않다. 최악을 평균으로 삼는 사회, 관대한 부성애 기준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다. 나는 전남편이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선 감정적, 재정적으로 더 많은 참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에 대한 애정, 추상적인 감정을 물질과 시간으로 환전하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의 경제력을 고려한 양육비는 인정하더라도, 노력의 결핍마저 눈감아 주고 싶진 않다. 결국 손님처럼 구는 전 배우자에게 부모로서의 역할을 환기시키는 일 역시 친권, 양육권자의 몫인 걸까? 부당함의 근거를 찾으며 해결책을 고심해도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 않다. 질문이 낳은 질문들이 나를 물고 늘어진다.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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