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18 19:08
수정 : 2018.01.18 20:02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어떤 무기를 들어야 좀비를 효과적으로 처치할 수 있을까? 길고양이 마을을 만들어 주민 대표가 된다면 업무량은 얼마나 될까? 인조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는데 세상 전체가 우리의 사랑에 반대하면 어디로 도망갈까? 현실보다 꿈이 더 좋아서 평생 잠만 자는 삶을 선택한다면?
나는 허무맹랑한 프로 공상가다.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며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수록, 내가 누구인지 확실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다섯 살 된 딸에게도 지지 않을 실없는 상상을 한다. 누구나 그렇다며 웃어넘길 수 없도록 진지하게, 2류 미국 드라마를 닮은 상상 속에서 시간을 허비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허황된 이야기 속에 나름의 기승전결과 갈등, 숨겨둔 욕망을 해소할 결말이 있다는 것이다. 딱 한 가지, 딸에게 미안하여 상상하지 못한 냉정한 가정만 빼고.
만약 딸을 낳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금기된 질문을 안고 ‘딸 없는 나’를 떠올려본다. 차가운 질문이 불러낸 비현실로 걸어 들어가 딸 없는 세상을 더듬는다.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여전히 시답지 않은 창작활동을 지속하며 머리를 싸매고, 곧 헤어질 애인과 미래를 약속하고, 유별난 옷을 입고 번화가를 헤집고 다닌다. 음악을 크게 트는 바에 앉아 어깨를 들썩거리고, 친구들과 ‘아이를 제외한 모든 주제’로 떠든다. 불안감이 뒤섞인 자유를 맛보며 인상을 쓰기도 하지만 온전한 나의 시간을 요란하게 축복한다.
서글픈 이야기건만, 무자식 인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숨통을 조인 속박을 풀고 광활한 하늘로 날아가는, 참새(존재감의 크기가 나와 비슷하므로)가 된 것 같다. 나만의 상상에 침입한 딸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전까진 그랬다.
나를 알고도, 나를 모르기로 선택할 수 있겠어? 만약 기억을 지우지 않은 채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한다면 말이야.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만의 시간’이 나 없이도 행복할 것 같아?
나의 사랑, 나의 딸. 그녀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딸의 코딱지마저 그리워지지 않을까? 나만의 삶에 대한 상상이 즐겁긴 해도, 딸이 내게 주는 애정과 달콤한 절망(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제공하는 울렁거림, 고통스럽지만 떨치고 싶지 않은)에 비교할 순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딸이 없는 삶을 상상할수록 딸의 존재가, 딸을 향한 나의 마음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만년 공상가답게 딸에게 던지고픈 짓궂은 질문도 떠오른다.
만약 너의 엄마가 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네가 어른이 되어 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면… 너는 이런 나를 엄마로 선택할까?
내가 낳은 여자, 미래의 딸이 할 대답은 어떤 것일까? ‘그래, 난 가끔 너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했어.’ 솔직할 수밖에 없는 나는 미리 연습하듯 잠시 울고 또 웃어 본다.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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