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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1 20:04 수정 : 2018.02.01 20:07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엄마, 개스톤이 벨한테 계속 결혼하자고 하는데, 왜 벨은 개스톤 싫다고 결혼 안 해?”

“개스톤은 벨을 좋아하나 봐. 벨은 개스톤이 싫어서 결혼하기 싫은 거고.”

“엄마아… 벨은, 왜 벨을 좋아한다는데도 개스톤 싫다고 하냐고.”

“너는 너 좋다는 사람 무조건 좋아? 개스톤 하는 행동 좀 봐. 이기적이잖아. 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지도 않고, 벨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잖아. ‘내가 널 좋아하니까 너도 당연히 날 좋아해야지.’ 그렇게 우기는 건 황당한 행동이잖아. 자기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겠어.”

“맞아, 엄마. 개스톤 이기적이야. 근데 이기적인 게 뭐라고?”

“세상에 내 마음만 있다! 내 마음만 있다! 하면서 다른 사람 마음 무시하는 거.”

“근데 엄마… 야수는 이기적 아니야?”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왕자였는데 마법에 걸려서 야수가 된 거잖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갖고 나서야 예전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약간 더 착한 마음을 갖게 된 거지.”

“야수가 개스톤보다 착해서 벨이 야수를 좋아한다고?”

“개스톤보다 야수가 벨을 더 이해하니까. 둘 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의 관심사도 있고.”

“야수가 벨한테 막 소리 질렀는데?”

“진짜 알고 싶어? 엄마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어?”

“응. 말해봐, 엄마.”

“내 생각엔 개스톤이나 야수나 둘 다 아주 고약한 인간이야. 이건 만화니까, 야수와 벨처럼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결말을 보여주는 거지. 만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달라. 네 말처럼 벨을 가두고 소리 지르던 사람이 좋은 사람이겠냐? 그렇게 폭력적인 남자가 가끔 다정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당신 사실은 착한 사람이군요.’ 해야 되냐고. 여자가 못된 남자를 지극정성을 다해 사랑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곁을 지키면, 결국 그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이 말이 되냐고. 그건 사랑이 아니지. 엄마가 어디서 읽었는데 옛날엔 정략결혼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의 동화가 생겼을 거래. 사랑 없는 결혼도 여성의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 엉망인 배우자를 만나도 그저 참고 인내하면 그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그런 관계는 위대한 사랑이 아니라 목숨이 달린 위험한 사건이 될 확률이 더 커. 미녀와 야수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어. 너는 개스톤이나 야수 같은 사람 만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야 해. 알겠어?”

“나 다섯 살이라서 엄마 말 모르겠어. 오줌 마려.”

쫄쫄 오줌을 다 눈 아이는 개운한 미소를 지었다. 혼자 흥분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은 나를 바라보며 미녀와 야수를 또 보자고 졸랐다. 내가 한 말을 까맣게 잊은 듯이, 혹은 나를 놀리듯이. 미녀와 야수가 그렇게 나쁜 만화라면 나는 왜 아이에게 미녀와 야수를 보여준 걸까? 스스로가 한심하여 울상 짓고 있으려니 딸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엄마, 나는 개스톤, 야수 안 좋아하고… 그냥 깨진 아기 컵이랑 주전자가 좋아. 엄마랑 아기 그릇이 나오는 데부터 또 보자. 응?”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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