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2 21:26
수정 : 2018.03.22 21:33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엄마, 나 출출한데 과자 하나만 줘.”
“아까 먹었잖아. 사람들이 쟤 또 과자 먹네, 꿀꿀이 되겠다, 그러면 어쩌려고.”
“그래? 그럼 저기 앉은 아저씨는 맨날 과자만 먹나 봐.”
“아, 아냐. 저 아저씨는 과자 안 먹을걸. 체형으로 사람 평가하면 안 돼. 알았지?”
“아까는 과자만 먹어서 돼지가 되는 거라며.”
분명 식습관에 대해 충고를 하려던 건데 어쩌다 특정 체형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심어주고 만 것일까. 내 설교의 모순을 지적하는 딸의 말을 듣고서야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제정신으로 돌아온 뒤엔 아이의 작전에 넘어가 해서는 안 될 협상을 하고 말았다. ‘진짜 마지막이야!’ 외치며 건넨 과자를 먹는 딸의 눈은 탄수화물과 설탕, 승리의 기쁨으로 넘실거렸고 나는 패배감에 젖어 내가 한 말들을 곱씹어 봤다. 비만이 아니어도 편향된 식습관으로 인한 질병은 많다. 나는 어째서 뚱뚱함 하나에 초점을 맞춰 경고한 것일까?
잘못된 교육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타인을 의식하게 만드는 협박 육아를 쉽게 멈출 수 없었다. 몸을 위한 생활 습관의 목적이 모두 타인의 시선을 위한 것인양 훈장질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단어를 쓰기보다 아이가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자고 시작된 잔소리는 어느새 ‘외모지상주의 만세! 평판 좋은 어린이가 되자’ 기초 교육이 되고 말았다.
“너 이빨 안 닦아서 몽땅 시커멓게 썩으면, 사람들이 우와, 무섭다, 그럴 거야.”
“엄마, 이빨은 안 닦으면 썩는데 얼굴은 어떻게 돼? 썩어?”
“비슷해(전혀 안 비슷해). 때…가 쌓여.”
“때가 쌓이면 사람들이 뭐라 그래?”
“아이고 지저분해. 쟤 엄마는 애 얼굴도 안 씻기나! 엄마를 흉보겠지.”
“그러면 엄마가 속상하겠네. 나는 괜찮은데.”
“그렇지. 엄마가… 내가 속상하지.”
내가 쏟아낸 설교는 딸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딸을 위한 것이었다면 애초부터 타인의 시선을 배제한 설명을 했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자신을 돌보는 일의 필요성을 천천히 일러줄 수도 있었다. 딸의 깔끔한 모습과 건강이 남들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늘 잔소리의 서두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로 장식했다. 제대로 된 엄마로 ‘보이려고’, 압박감을 덜고 싶어서 딸에게 외모와 평판의 중요성을 들먹였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전혀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해 온 것이다.
오늘도 딸은 사탕, 과자 없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듯 행동했다. 개선장군마냥 식탁 의자에 우뚝 서서 시시한 반찬들을 내려다보는 딸. 디저트 타령하는 아이에게 화가 나 익숙한 잔소리를 쏟아내고 싶었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기에 대신 이렇게 외쳤다.
“네가 이렇게 밥을 안 먹으면, 쌀들이, 응? 쌀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역시나 제자리걸음. 딸은 적개심 찬 표정으로 밥을 노려봤고, 인간이 아닌 쌀에게마저 잘 보여야 한다고 소리친 나는, 사람들이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정말 궁금해졌다.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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