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3 20:47
수정 : 2018.05.03 21:18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딸에게 청혼받은 적이 있다.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딸은 아빠도 아닌 엄마, 나에게 청혼했다. 딸은 사랑보다 더 큰 감정을 품고 있는 단어를 안다는 듯이 속삭였다. “나 크면 엄마랑 결혼할 거야.” 나는 내가 아는 단어를 지우고 아이에게서 새로 태어난 ‘결혼’을 보듬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 내게 청혼해 준 딸이 고마웠다.
“아니, 엄마랑 안 해. 나 다 크면 잘생긴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언제는 나랑 결혼할 거라며?”
“내가 그때 어려서 그랬어. 몰랐어. 엄마랑은 싫어.”
올해 ‘언니야(유치원생)’가 된 딸에게 파혼당한 나는 속상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게 결혼하자고 했던 딸이 그리웠다. 다른 한편으론 딸이 안다고 자부하는 결혼의 의미를 함께 되짚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의 룰을 학습하기 시작한 다섯 살, 나는 딸에게 결혼이 뭐냐고 물었다.
“어, 엄마.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같이 사는 거야.”
“사람들은 다 달라,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하기 싫은 사람도 있어.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해?”
“응, 사랑하면 꼭 결혼하는 거야.”
“엄마처럼 결혼한 뒤에 헤어지면? 또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
“아니, 그건 아닌데….”
“결혼했다가 사랑하지 않으면 엄마처럼 이혼하기도 하잖아. 이혼하고도 또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아예 결혼 안 하는 사람도 많아. 그건 다 자기가 결정하는 거야. 사람은 다 다르거든.”
나는 차마 못 한 말들을 쓰다듬으며 ‘이만하면 이해하겠지?’ 중얼거렸다. 아직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랄 딸의 마음에 깊숙이 파고들진 못하더라도, 딸이 바깥에서 주워온 편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꽉 막힌 세상아, 내게 돌을 던져라! 나는 딸에게 다양성과 존중을 가르치는 엄마다!
“그래두우, 나는 결혼 꼭 하고 같이 영원히 살 거야. 나는 엄마랑 다르거든. 사람은 다 다르거든.”
“아, 그래? 그렇구나. 결혼해서, 영원히, 함께, 살 거구나….”
딸 말이 맞는데, 왠지 틀리다고 하고 싶었다. 결혼한 사람과 영원히 함께 살 거란 말이 나를 향한 비난처럼 느껴졌다. 나는 진짜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 선택을 부정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지 않았을까. 세상의 편견에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중 절반은… 이런 것이었을까. 네 아빠와 이혼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어? 이제 다섯 살이니까 이해할 수 있겠지?
미션 임파서블.
남대문에서 산 면사포 머리띠를 하고 의연한 표정을 짓는 딸. 분명히 그녀와 나는 다르다. 성격과 생각이, 살아갈 시대가 다르다. 나는 딸에게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다섯 살인 지금도, 스무 살, 서른 살이 될 먼 미래에도.
’딸아, 네가 나랑 파혼 참 잘했지. 나보다 현명한 너는 분명 좋은 결혼을 하고(안 해도 돼) 또 그(혹은 그녀)와 영원히 행복할 거야, 아무렴 그렇고말고.’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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