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24 20:34
수정 : 2018.05.24 20:50
[책과 생각]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이건 이름이 뭐야?”
“거북알 로카시아. 아마 로카시아겠지. 로카시아라는 식물의 한 종류 아닐까?”
다가올 여름에 대한 힌트를 주듯 강렬히 내리쬐는 빛, 나는 직사광선이 쏟아지는 곳에 식물을 내려놓으며 ‘로카시아야, 햇빛 많이 받아.’ 상냥하게 말했다. 짙은 녹색과 흰 줄무늬가 멋지게 어우러진 이파리를 보며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작고 아름다운 식물을 크게 키워 방 안을 녹색으로 물들일 플랜테리어 아이디어에 도취하여 히죽거렸다. 어린 식물이 빨리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큰 바가지에 물을 잔뜩 떠서 뜨거운 햇볕에 놓여 있는 ‘로카시아’ 위에 쏟아부었다.
과거에 고양이를 위한 캣그라스나 봉선화, 몇몇 종류의 허브를 키워보려 시도했지만, 매번 처참하게 폐농했다. 새싹이 흙을 뚫고 나온 것을 목격했을 때의 희열이 가시고 나면 도무지 관심이 가질 않았다. ‘풀 같은 거, 가끔 물 주고 햇빛 받으면 자연스럽게 자라는 거 아닌가? 자연이니까.’ 무지한 태도로 화분을 잊고 지내다 문득 생각이 나서 들여다보면 식물은 모조리 죽어 있었다. 싱그러운 생명이 가득해야 할 자리엔 흙에 머리를 처박은 채 메말라 죽어 있는 풀 줄기밖에 없었다. 무덤 같은 화분은 나를 향해 “네가 나를! 네가 나를!” 누런 흙을 뱉으며 호통쳤고, 놀란 나는 슬리퍼를 끌며 뒷걸음질로 도망갔다.
그동안 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내 무관심이라고 분석했기에 이번에는 식물에게 관심을 많이 주기로 했다. 실내 식물이라도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점심때가 되면 베란다에 내놓고 직사광선을 받게 해주고 물도 펑펑 많이 줬다. 무한한 관심을 갖고 사랑이 담긴 눈으로 식물을 바라봤다. 식물에 정성을 쏟는 스스로가 대견해서 ‘역시 나이가 들면 자연에 관심이 가고 그러는 건가?’ 흔한 말을 읊조렸다. 말 없는 생명을 이해하는 길, 마치 평생 식물을 키워온 듯 내 심장마저 푸른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왜 잎사귀가 모두 갈색이 된 거야?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축 처져서 왜 그래?”
나와 가족이 된 지 1주일 만에 ‘로카시아’는 죽고 말았다. ‘오! 나의 로카시아, 로카시아…’ 나는 식물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마음으로)했다. 죄 없는 식물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카시아’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식물이었다. 거북 알로카시아, 알로카시아 아마조네카라고 불리는 식물이 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이름으로 불러왔으면서도 한 번도 검색해 볼 생각을 안 했다니, 과습과 직사광선으로 죽인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알로카시아 아마조네카의 죽음 이후, 나는 식물을 입양하기 전에 생존 전략부터 짠다. 재배 정보를 검색하며 내 수준에 맞는 식물인가 확인한다. 플랜테리어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건강한 식물 죽이지만 말자, 이제 목표는 그거 하나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 그들의 녹색 바디랭귀지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흙과 습도, 바람의 필요를 그들처럼 느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평화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고 없이 자라는 생명은 없다는 걸, 나는 그 당연한 이치를 이제서야 배워가고 있다. <끝>
정새난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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