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초인은 지금김이환 지음/새파란상상(2017) 마블과 디시코믹스에서 나온 슈퍼히어로 만화나 영화의 열렬한 팬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한때 어떤 초인적 영웅에 열광했다. 보통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춘 자가 인류를 구원해준다는 이야기는 인간이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던 그 시절부터 서로 나누던 신화가 아니었던가. 이들은 슈퍼맨처럼 외계인일 수도, 토르처럼 신일 수도 있으며,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과학 기술을 이용할 부를 가진 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삐딱하게 보면, 간단한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정말 왜 인류를 구원하는 걸까? 그런 정도의 힘이 있다면 세계 정복도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려는 슈퍼 악인들도 많은데? 김이환의 <초인은 지금>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며, 슈퍼영웅 서사를 메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판타지 소설이다. 소설의 화자인 정훈은 어느 날 서울 동대입구역에서 지하철 사고를 당하고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그를 구해준 것은 분명 어떤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 초인이다. 초인의 도움으로 살아 나온 그는 사고 후 외상 증후군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대신에 초인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초인은 정훈 외에도 목숨이 위험한 여러 사람을 살렸지만, 그의 활동에는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지극히 당연하게도, 초인은 인간을 능가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체력도 강하지만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칼에 찔려도 다치지 않는다. 두 번째 특징은 이 초인은 서울에서만 활동한다는 것이다. 범인과 피해자가 시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초인은 물러선다. 세 번째는 오로지 인간의 목숨이 달린 사건에만 관여한다는 점이다. 정훈은 초인 카페의 관리자와 함께 이 수수께끼에 몰두한다. 이 세가지 특징은 어째서 존재하는가? 어째서 초인은 인간을 구하는가? 그는 누구인가? 이 질문들은 우리가 늘 품었던 것이기도 했다. 각자의 슈퍼영웅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흔하게는 “위대한 힘에는 위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당위적 도덕법칙을 걷어버리면 가끔은 인간도 아닌 초인이 인류애를 가져야 한다는 요구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초인은 지금>은 슈퍼영웅의 철학적 문제를 동시대적으로 따라가는 소설이다. 우리는 초인의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힘을 갖춘 자가 우리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구원 당하기를 소망해서 그들을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어딘가에 선량하고도 강한 존재가 있어, 우리가 개인으로, 혹은 종족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준다는 믿음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요정의 존재를 믿는 어린아이들이 요정을 살렸듯이. 역으로 보면 이 소망은 우리의 삶이 임의적 위험에 늘 직면해 있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초인은 지금>을 보면서, 사고에 처한 인간을 구해줄 초인을 몹시도 갈망했으나 결국 좌절했던 과거의 그 어떤 날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초인이 없는 세계에서 상처 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을 보여준다. 나는 이 끝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에 조금은 믿고 싶기도 했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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