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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루페(2017) 자신을 버리고 떠나겠다는 남편을 저녁 식사 재료인 냉동 양고기 다리로 쳐서 죽인 아내가 있다. 사건 현장에 온 경찰들은 진상은 까맣게 모르고, 희생자의 가여운 아내가 내놓은 양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는다. 로알드 달의 단편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을 읽고 실용적인 이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과연 그 요리가 맛있었을까? 해동도 제대로 안 하고, 양념을 제대로 할 시간도 없었을 양고기 다리가? 비슷한 의문을 품어본 적 있으나 소설의 진행을 위해 설익은 양고기 다리 정도는 용서할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 <섬에 있는 서점>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당연하게도 책을 읽는 사람들은 서점에 관한 소설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행복해졌던 곳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서점은 독특해지기엔 너무 익숙한 소재이다. <섬에 있는 서점>은 처음 보기엔 또 하나의 서점 소설인 것만 같다. 섬에 있는 작은 책방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삶을 그린 이야기, 이런 건 이미 많이 보지 않았나? 그럼에도 이 책은 전형적 따뜻함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미덕이 있다. 출판사 영업사원 어밀리아 로먼은 좋아하는 책 <늦게 핀 꽃>을 포함한 추천 목록을 들고 앨리스 섬에 있는 아일랜드 서점을 찾아간다. 아내를 잃은 서점주인 A. J. 피크리는 역시 아내를 여읜 여든 살 남자의 회고록인 <늦게 핀 꽃>에 시큰둥해하고, 어밀리아와는 말다툼을 하고 헤어진다. 이후, 서점에서는 희귀본인 에드거 앨런 포의 <태멀레인> 초판본이 사라진다. 그 와중에 마야라는 여자아이가 서점 앞에 버려지고, 피크리는 그 애를 돌보아야 할 처지가 되어버린다. <채링크로스 84번지>(헬렌 한프, 궁리),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이덴슬리벨)의 연장선에 있는 <섬에 있는 서점>은 소위 책 로맨스이다. 이 소설에는 값비싼 초판본을 훔쳐간 사람은 누구인지, 마야의 출생 비밀은 무엇인지 하는 수수께끼가 있지만 그게 중심은 아니다. 소설을 끌어가는 원동력은 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책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다. 매 장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을 포함, 피크리가 책에 관한 감상을 담아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이렇게 우리는 책들을 통해 피크리라는 사람의 인생을 하나씩 알아간다. 나는 이제는 같은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숲> 속 유명한 대사처럼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었다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 같은 말은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같은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연결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같은 책을 좋아해야 할 필요도, 같은 부류여야 할 필요도 없다. <섬에 있는 서점>은 사람은 혼자서 책을 읽지만, 책을 읽는 순간 혼자가 아니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설사 삶의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그렇게 혼자가 아니었던 감정만은 잃지 않는다고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는 또 한번 덜 쓸쓸했다. 박현주 소설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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