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02 18:02
수정 : 2017.02.02 20:56
강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어떤 나라에도 의연할 수 있는 큰 정치를 그려보자. 우리 외교의 난맥상의 근원을 해결하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대내외정책을 펴기 위해서, 비현실적인 통일을 전제로 한 남북대결로부터 ‘두 국가’를 바탕으로 안정된 장기적 전망을 세울 것을 차기 정권 담당자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이남곡
인문운동가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두 기둥이 조화되어야 한다. 평등이 결여되면 ‘실질적 부자유’가 커지고, 자유가 억압되면 ‘악평등’이 된다.
이제 ‘좌빨종북’으로 진보를 공격하는 시대는 사라질 때가 되었다. ‘좌파’가 무엇인가? 평등을 지향하는 입장이다. 자유를 억압하면 그것은 진보라고 할 수 없다. 빨갱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악몽과 더구나 김씨 왕조로 변한 북한을 지지하는 것은 진보와는 전혀 인연이 없다.
진보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스스로 이런 함정에서 벗어나서, 한쪽에서는 좌빨로 공격당하고 다른 쪽에서는 귀족노조운동으로 비난받는 등의 복합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다.
‘친일 청산’이란 말로 보수를 공격하는 것 또한 현실과 맞지 않다. 우리는 해방과 건국 과정에서 ‘일본제국주의 부역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였다. 출발이 나빴다. 일제부역자들은 자연 수명이 다했지만 그 후손들이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아 불의한 기득권세력으로 된 측면이 많다. 그런데 그 과정이 세계 최빈국에서 벗어나 경제대국으로 되는 ‘한강의 기적’과 겹쳐 있다. 우리가 개혁해야 하는 것은 그 과정의 부정부패, 독재와 정경유착 그리고 부의 과도한 집중이다.
점점 심해지고 있는 양극화·이중화의 해소와 사회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 진보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지키고 국력의 침체를 막는 것이 보수다.
진보와 보수가 협력하는 것만이 분열과 침체를 극복하고 선진화·인간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을 가로막는 극단적 대립의 근원이 이제는 분단보다 통일이라는 동상이몽의 완고한 관념이다.
지난 70년 동안 전혀 다른 두 개의 국가가 이루어졌다. 실사구시해야 한다.
북한 민주화운동가인 김영환씨가 쓴 글의 일부다. “통일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가? 이건 누구도 자신있게 답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는 비교적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첫째, 분단 상태가 현재처럼 지속되면 남북간의 군사적 대립과 긴장을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이며 그런 군사적 대립이 어떤 끔찍한 길로 인도할지 아무도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통일밖에 없다. 둘째, 한국병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거의 찾기 힘든 조건에서 통일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약이라는 것이다.”
분단 상태에서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는 길은 통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리한 통일 추구는 전쟁의 제1원인이 될 수 있다. 한(韓)·조(朝) 국교정상화를 북-미 수교나 북-일 수교에 앞서 주도적으로 이루는 것이다. 남북의 이른바 특수관계를 일반 국가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상호불가침은 기본이다. 반성도 진정한 사죄도 없는 일본과도, 과거의 교전국이었던 중국과도 국교를 정상화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국력격차와 한국민의 자유도로 볼 때 북한이 통일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도 만전을 기하기 위해 한국은 당연한 주권행사로 필요한 집단안전보장 체제를 유지한다.
둘째,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점차 노쇠해지고 경직되어 있는 한국병’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통일이라는 것 또한 근거가 약한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남이 북을 흡수통일하는 것은 김영환씨 스스로도 재분단의 위험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치명적이다. 일반 국가관계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가운데 얼마든지 협력과 상생을 할 수 있고 인도적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북의 민주화와 변혁은 기본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의 몫이다.
남북의 내부 변화와 관계 진전에 따라 얼마든지 북은 기회의 땅으로 될 수 있다. 강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어떤 나라에도 의연할 수 있는 큰 정치를 그려보자. 우리 외교의 난맥상의 근원을 해결하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대내외정책을 펴기 위해서, 비현실적인 통일을 전제로 한 남북대결로부터 ‘두 국가’를 바탕으로 안정된 장기적 전망을 세울 것을 차기 정권 담당자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북핵’ ‘사드’ ‘트럼프 현상’ 등 심각한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먼저 외세에 의해 주어진 상상력의 굴레를 우리 스스로 해방하고, 동족 간의 전쟁 위험에서 벗어나 통일보다 더 광활한 앞날을 내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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