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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
한국은 2차대전 후 신생독립한 나라 가운데서는 독보적인 진전을 이룩한 나라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에서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정치적 민주주의나 개인의 자유라는 차원에서도 단연 앞부분에 있다. 선진국의 문턱까지 와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앞에서 멈칫거리고 있다. 향후 몇 년 안에 문턱을 넘지 못하면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고 국민의 지지와 기대를 많이 받는 정부가 탄생했다. 이 정부가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현실의 모순을 잘 해결하는 것에 나라의 명운이 달려 있다. 그래서 협치가 필수적이고, 정부의 지지자도 반대자도 ‘새로운 나라 만들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 지금까지의 토론문화를 바꿔야 그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새로운 토론문화를 고전을 빌려 말해 볼까 한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논어 9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의 말을 내 나름으로 의역해 본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어오더라도,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그 양쪽 끝까지 철저히 검토하여 밝혀 가겠다.”(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오유지호재 무지야 유비부문어아 공공여야 아고기양단이갈언)) 그 내용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본다. 1) 소통은 과학이다. 요즘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말 가운데 ‘소통’이 있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내 생각이 틀림없다’ 또는 ‘내가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것에 불과하다. 공자는 이것을 ‘무지’(無知)라고 표현한다. 이 무지의 자각이 과학이며,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 신념이나 의지나 자신감이 강한 사람들에게 이 자각이 힘든 경우가 많다. 사익이나 권력을 위해 견강부회하는 무리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공익·진보·과학을 추구한다면서 실제로는 반과학적이 되는 사람이나 집단을 보는 것이 안타깝다. 무지의 자각은 깜깜함이나 불가지론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탐구의 시작이다. 그것은 진리 탐구에 대한 설렘이며 기쁨이다. 2) 탐구 태도 탐구의 핵심 태도를 공자는 ‘공공’(空空)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많은 오해들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지식·경험·가치관·신념 등을 비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거부감을 느낀다. 그것들을 비우면 무엇으로 탐구하는가?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되, 다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사실 그 자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토론문화는 서로 마주 보고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엇이 옳은가’를 모두의 지혜를 모아 탐구하는 과정으로 되는 것이다. 비로소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귀중한 지적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3) 철저 구명 소통과 탐구는 그 시점의 공동 목표와 그것에 도달할 방법과 그 구체적 실천에 합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민주사회가 되었는데 의식과 문화에서는 수평적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성격이 다른 위기를 겪고 있다. 모순이나 사회의 성격이 달라졌는데도, 낡은 이념이나 정서에 의한 편가름·불신·증오·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양 끝 사이에 있는 무수한 현상과 과제들을 어떤 예단도 없이 실사구시로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아무리 치열하게 토론해도 리(理)에 따르는 탐구 태도를 견지하면 정(情)을 해치지 않고 그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4) 선택은 실행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실행해보고, 다시 검토한다. 만일 잘못이 발견되면 기탄없이 고친다. 어떤 단정이나 고정도 없어야 전진이 가능하다. 대동(大同)보다 소이(小異)에 집착하고, 말과 심층의 욕망이 다른 허위가 지배하고 의식 속에 여러 형태의 계급장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낡은 토론문화를 바꾸자. 그래야 새로운 문명의 선진복지국가로 향한 길이 열린다. 이런 문화 변혁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좌우를 아우르는 질적으로 새로운 큰 정당이 이 땅에 출현하기를 바란다. 이 정당은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선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생전에 이 당의 당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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