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17 18:07
수정 : 2017.08.17 20:38
이남곡
인문운동가
지난 15일이 광복절 72주년이었다. 지금 한반도의 상공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불길하게 어른거리고 있다. 어렵사리 마련한 물질적·제도적 토대가 외부적으로는 전쟁에 의해, 내부적으로는 양극화·이중화에 의해 크게 위협받고 있다.
남북은 국제법상 또 국제관계에서 실질적으로 두 개의 독립국가이다. 그런데 남북 수교를 통해 ‘두 국가관계’로 평화를 보장하고 수천년 공동체의 생명력을 유지·확장하자는 제안을 하면 좌우를 불문하고 이유는 다르지만 반대와 저항이 있다.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심하다.
나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반대 이유들을 보면 다양하다. 대체로 단일민족이니까 단일국가가 당연하다는 논리와 정서가 있다. 그다음으로는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으니까 그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하는 것이 자주성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하면 한 민족이 다(多) 국가를 운영할 수도 있고, 그런 결정 자체를 주도하는 것이 진정한 자주성의 발로일 수 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가 대립과 전쟁의 원인으로 되는 기막힌 현실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우파의 일부에서는 그냥 놔두면 곧 망할 정권인데, 굳이 북을 국가로 인정해 도와줄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반문이 있다. 현재의 북한 정권이 망해서 교체된다고 해도 통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설령 기회가 된다고 해도 바로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국가의 성격과 과제가 너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1국2체제의 수평적인 연방제 통일은 불가능하다. 통일이 된다면 실제로는 흡수통일인데, 지금 남북의 실정으로는 내전과 재분단의 가능성이 높다. 좌파나 민족주의자의 일부는 반외세 통일을 이야기한다. 반외세는 반미를 의미한다. 현실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미국을 태생부터 악의 제국으로 묘사한다. 유럽인(백인)에 의한 근대의 식민화 과정을 보면 그렇게 말할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또 다른 얼굴이 있다.
한국이 중견국가로 되기까지 부정할 수 없는 미국의 역할이 있었다. 나아가 유동적인 정세 속에서 한-미 동맹을 평화의 한 요소로 발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은 말로는 통일을 지상과제로 이야기하지만, 여러 역량 관계나 한국의 시민의식 등을 고려할 때 실제로는 두 국가를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히려 한국의 좌파의 일부가 실사구시를 못하고, 좌파의 정체성과는 인연이 먼 민족주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핵을 가진 나라와 어떻게 평화를 이야기하느냐고 말한다. 두 국가로 평화체제를 이루는 과정(남-북 수교, 북-미 수교, 북-일 수교 등)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동안에 쌓인 불신 때문에 아마 정전상태를 끝내는 복잡한 협상 과정에서 치열한 샅바싸움이 있을 것이다. 북도 고슴도치의 신세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로 나아갈 준비와 환경이 되면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영구분단, 분단의 고착화 같은 말들도 실제적으로 의미가 없다.
어떻게 미래를 예단할 수 있는가? 우선 두 국가를 운영하는 자주적 결단을 해보자. 그리고 남북이 자기 책임 아래 각각의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전쟁의 위협 없이 전념해 보자. 한 30년 운영해 보고, 그다음은 그 시대의 주역들에게 맡기면 된다.
요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 요소)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핵무기나 미사일이 게임체인저가 아니다. 지금 북-미 간의 치킨게임은 수많은 우리 동족의 생명을 인질로 삼아 낡은 게임의 룰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는 현상에 불과하다.
북은 전근대적 군사 왕조 체제, 남은 천민자본주의라는 성격이 다른 과제를 각각 안고 있다. 그러나 성격은 달라도 집단지성과 집단 욕망의 수준이 난형난제이고, 거기다가 통일을 전제로 만나면 아마도 경제력보다는 무력이 우선할 수 있다. 한국도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다. 남북이 통일이라는 동상이몽의 꿈을 꾸면서, 핵폭탄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어리석은 비극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한국이 외적으로는 남북 수교를 통해 두 국가체제로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내적으로는 진정한 협치와 연정을 통해 천민자본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문명의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갈 때 미래 세계의 진정한 게임 체인저로 우뚝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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