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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9 18:13 수정 : 2017.10.19 18:58

이 땅에는 위대한 이념이 있다. 현대의 생태적 문제를 고려하여 홍익인간을 홍익만유로 확장한다면 이화세계와 더불어 제2기 르네상스의 핵심사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개벽운동이 과학과 결합하여 물질·제도·의식의 총체적 변혁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세계 변혁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이남곡
인문운동가

나라가 내우외환으로 힘들다. 이런 때일수록 공통의 큰 꿈 속에서 서로의 다툼과 맺힌 한(恨)들을 녹이고, 지혜와 힘을 모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 모순이 집중된 곳에서 세계를 살리는 대계(大計)가 나올 수 있다.

첫번째 큰 꿈은 제2기 축의 시대 르네상스를 이 땅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상 하나의 획을 그은 르네상스가 있었다면, 그것은 축(軸)의 시대라고 불리는 2500여년 전 이른바 성인(聖人)들의 동시적 출현과 함께 나타난 인간 정신의 비약이었다. 원시적 수평사회가 생산력의 발달과 함께 수직적으로 분화하면서 억압·착취·전쟁 등이 심해지자, 신화 등의 형태로 전해져온 인류의 원형적 지성의 고차원적 부활을 추구한 것이다.

인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지만, 보편화·대중화·현실화하기에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유럽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이 있었고, 시민혁명과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항한 사회주의 혁명 등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세계는 지금 인류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변혁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제도화·종교화되기 이전의 축의 시대 선각자들의 정신이 과학과 결합하여, 상당한 수준의 물질적·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보편적으로 실현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위험할 정도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이른바 인공지능 등에 의해 생산력의 비약을 가져올 것인데, 지금의 체제나 의식과 생활양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대변혁이 평화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 바탕은 축의 시대 르네상스를 사회 전반의 영역에 보편화하는 것이다.

이 땅에는 대단히 위대한 이념이 있다. 현대의 생태적 문제를 고려하여 홍익인간을 홍익만유로 확장한다면 이화세계와 더불어 제2기 르네상스의 핵심사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서 일어난 개벽 운동은 그 이념이 온갖 간난신고에도 불구하고 맥맥이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개벽운동이 이제 과학과 결합하여 이 땅에서 물질·제도·의식의 총체적 변혁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동아시아의 평화적 공존과 번영은 물론 세계 변혁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두번째 큰 꿈은 이 땅에 21세기의 모범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세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물적 토대, 즉 국부(國富)다. 중심교역국가의 위상을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가 최빈국의 하나에서 중견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방적인 대외지향적 경제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의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여야 한다. 다음은 양극화의 해소와 선구적인 복지제도다. 임금과 연금의 차별 해소, 불로소득(지대추구) 억제, 공공부문 개혁, 조세제도 개혁, 기본소득의 확대, 사회안전망 등이 정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의식의 진화다. 특히 이것은 인류의 생태적 위기와 관련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 즉 새로운 문명을 지향하면서 물질본위의 전도된 행복관과 각자도생의 차가운 자유관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 셋은 지금까지는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좌우·보혁의 시각으로는 이에 대한 총체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하나를 잡으려면 다른 것이 꼬인다. 이제 각 정파가 시대의 요구에 맞는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고, 대립·적대의 관계로부터 보완·협력의 관계로 변화해야 한다. 기득권 노조를 설득하고 개혁하는 진보정당, 부자들의 증세를 이끌어내는 보수정당이 출현해야 한다. ‘협치와 연정’은 이 세 과제를 함께 풀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할 정치 과정이다.

이 두 꿈, 즉 제2기 르네상스와 21세기 모범국가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절대조건이 한반도의 평화다. 그 출발은 남북이 일반국가 관계로 수교하는 것이다. 이것이 통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 칼럼에서 몇 차례 언급하였다.

항구적 평화를 위한 첫 단추는 우리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안보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좌우가 하나로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좌파는 스스로 설 자리와 역할을 잃는 것이다. 낡고 완고한 관념들에서 벗어나 광활한 미래를 내다보자. 그리하여 이 땅에서 세계 청년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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