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30 18:14
수정 : 2016.08.09 14:35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국가정보원이 탈북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과정을 추적한 영화 <자백>이 스토리펀딩 개시 열흘 만에 목표액 2억원을 달성했다. <자백>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과 넷팩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작품성을 입증한 영화로, 스토리펀딩 성공에 힘입어 올가을 개봉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상영이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교차상영과 조기종영 등 극장의 변칙상영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토리펀딩의 성공은 진실을 보려는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했다.
공연계에도 최근 소셜펀딩을 통해 관객을 만나게 된 일련의 작품이 있다.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프로젝트다. 제목에 등장하는 ‘검열’은 지난해 공연예술계의 최대 화두였다. 전작 <개구리>에서 현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사실을 빌미로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의 최종 선정에서 배제되었다. 연극 <이 아이>는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한국공연예술센터 쪽으로부터 공연 방해를 받았다.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는 이러한 정치적 검열에 대한 21명의 연출가와 20개 극단의 대답인 셈이다.
첫 테이프는 현 정부 산하기관의 정치적 검열을 정면 비판한 극단 드림플레이테제21의 연극 <검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이 끊었다. 이어진 연극 극단 신세계의 <그러므로 포르노>는 일상적 검열행위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고,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연극 <안티고네 2016>은 그리스 비극을 현대로 가져와 국가의 자유 통제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네 번째 작품인 전인철 연출 극단 돌파구의 <해야 된다>(사진, 극단 돌파구 제공)가 공연 중이다.
결론을 당겨 말하자면, <해야 된다>는 ‘표현의 자유를 달라’고 주장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부지불식간에 검열기제를 작동시키고 있지는 않나’ 자문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연출은 세 가지 에피소드를 준비했다. 지난해 발생했던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 ‘갤러리’와 2008년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반발해 국가를 상대로 냈던 청구소송을 다룬 ‘불온’, 그리고 올해 경북 구미시에서 구미시민과 경북도민의 혈세 28억원을 투입해 제작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다룬 뮤지컬 <고독한 결단>(가제)의 원작을 재현한 ‘초인’이 그것이다. 이 작품의 방점은 여기 찍힌 듯하다.
‘초인’은 5·16이 쿠데타가 아닌 국민혁명이라며 구구절절 설명하는 한편,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피살 당시 초인적 기개를 보여주었노라고 거푸거푸 묘사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번 프로젝트의 경향과 대척점에 놓인 듯하나, 이 에피소드의 목적은 은연한 질문에 있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면서도 자신과 정치적·이념적 지향이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그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 않은가? 28억원의 세금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말이다. 어쩌면 여기에 마련된 결론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
이러한 반정부적 작품에 대한 현 정부의 검열방식은 은밀하고 치밀해졌다. 심사에서 탈락시키거나 상연 기회를 박탈하는 등. 그러나 요체엔 지원금이 있다. 공연계에 지원금은 생명끈과도 같은 것으로, 정부는 그 돈줄을 쥐고 생명줄을 위협하지만, 그렇다고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작품들을 고사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제작비로 공연 중인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남은 일은 객석에 앉아 그들의 고민을 듣고 보고, 함께 나누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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