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07 18:16
수정 : 2016.08.09 14:35
박보나
미술인
안산에 있는 경기도미술관에서 지난 4월16일부터 시작한 ‘사월의 동행: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이 두 달여간의 전시 끝에 지난달에 막을 내렸다. 세월호 참사에서 어른으로서 수많은 어린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죄책감과 함께, 이후에 정부가 보인 무책임한 태도와 사람들 사이에 생긴 분열과 증오가 여전히 아픈 염증으로 마음에 아리게 남아 있다. 미술 작가로서 이렇게 무거운 사고를 멀리 밀어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주제로 미술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반면, 세월호를 주제로 미술 작업을 한다는 것 역시, 희생자와 유가족을 소외시키고, 작품을 위한 소재로 끌어내리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같은 시대를 사는 다른 작가들은 이 엄청난 사회적 재난을 어떻게 겪고 있고,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가깝지 않은 안산이지만 전시를 보러 다녀왔다.
경기도미술관은 안산 단원구 세월호 정부 합동분향소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유족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미술관과 지역 사회의 연대 차원에서, 세월호에 대한 전시의 개최는 복합적인 필연성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세월호 참사 2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추념하고,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보자는 전시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참사에 대한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진상 규명과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현 상황에서, 미술 시스템 안에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애도를 한다는 것이 여전히 참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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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동행: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전시 장면. 권용주, ‘아카이브_증축’, 800×500㎝ 이상 가변 설치, 라왕각재, 베니어합판, 수성페인트, 2016. 사진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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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로서 약간의 거리감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예가 있다. 중국의 미술 작가 아이웨이웨이는 쓰촨성 지진으로 많은 학교 건물이 붕괴해서 수천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에 분노하여, 희생자를 애도하고 지방 관리의 부패와 부실 공사에 대해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미술 작업을 했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의 철근 200톤을 구입해, 규모 있는 설치 작업(Forge/Straight 2008~2012)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책가방 9000개로 독일 뮌헨의 한 미술관 벽에 ‘소녀는 이 지구에서 7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중국어로 쓴 작업(Remembering, 2009) 등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업들은 작가의 의도와는 아마도 별개로, 재난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이나 미국에서 큰 호응을 얻고, 아름답고 스펙터클한 미술 작품으로 무심하게 감상되며, 미술 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게 된다. 아이웨이웨이의 미술 작품 안에서 참사의 흔적은 옅어지고, 희생자 대신 작가가 더 조명을 받게 돼버린 것이다. 이런 미술 구조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죽은 자들을 애도할 수 있을까.
경기도미술관의 ‘사월의 동행: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룬 작업들을 볼 수 있었다. 작가와 희생자 혹은 유족, 그리고 미술 작품과 참사의 순서와 크기에 대해 여전히 고민의 여지가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참여 작가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망각에 저항하고 슬픔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사회적 재난을,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을, 미술 안에서 다루는 것에 대한 작가들의 무거운 갈등도 짐작할 수 있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우리 모두에게 세월호 참사는 너무 큰 상처여서, 세월호를 앞에 두고 미술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어렵기만 하다. 미술 작가들이, 국민들이 아프게 고민하는 만큼, 아니 그 반의 반만큼이라도, 참사 책임자들도 반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사의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에 대한 현실적 실타래가 풀려서 이 집단적인 트라우마가 옅어져야, 우리도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미술로 애도를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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