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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11 18:09 수정 : 2016.08.11 20:08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이 글에는 연극 <글로리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대한 군더더기 말을 먼저 붙인다. 사람들은 스포일러로 인해 긴장감이 떨어지고 흥이 깨진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스포일러는 수작과 범작의 구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 반전이 핵심인 작품의 경우 더욱 그렇다. 수작은 반전 이전에 치밀한 복선과 은밀한 암시를 매설해 긴장을 유지하지만, 대개의 범작들은 반전에 골몰하느라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놓쳐 긴장을 잃는다. 그래서 필자는 스포일러를 탐독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이쯤에서 다른 기사로 시선을 옮기시라 권하겠다.

연극 <글로리아>의 주인공은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성격,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 글로리아다. 등장 횟수 4번, 등장 분량을 다 더해도 5분이 넘지 않는 인물이지만, 글로리아는 공연 내내 다른 인물들의 입방아에 올라 조롱받고 정의되는, 이 연극의 주인공이다. 연극의 중심사건은 그가 15년 동안 함께 근무한 동료 10명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단살인사건이다. 참극을 벌이기 바로 전날 자신이 모은 월급으로 장만한 새집에서 동료들을 초대해 집들이했던 그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연극 <글로리아>의 1막은 이렇게 끝난다. 이어지는 2막은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다. 총격이 벌어지던 순간 자리를 비워 죽음을 면했던 켄드라와 총기난사 현장에 있었지만 책상 아래 숨어 목숨을 부지했던 낸, 그리고 글로리아가 유일하게 살려주었던 딘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담을 책으로 펴내려 한다. 목격자로서 사건의 전말을 증언함은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그런 순수한 의도만 있는 건 아니다. 작가 이력을 쌓으려는 그들과 대중의 호기심에 편승한 출판업자의 욕망 속에서 글로리아는 소비되고 이용된다.

대형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의 면면에 호기심을 품는 건 사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폭력가정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랐거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을 앓았을 거라는 등 살인의 원인을 찾으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마도 이때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콜럼바인 총기난사의 가해자 딜런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수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그는 ‘왕따’는 대량살상자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라고 설명한다.

덧붙여 말한다. “이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라고. 평범한 가정에서 문제없이 자란 청년이 어떻게 살인자로 변했을까? 이에 대한 유일하고 절대적인 답은 없을 것이다. 수 역시 가정적, 병리적, 사회적 원인 등 다양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둔다. 그중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옮기면 이렇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이 그 학살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가해자에게 괴물의 탈을 씌워, 그와 그의 가족, 혹은 사회에 원인이 있다고 믿으려 한다.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해 자신은 무관함을 확인할 때 비로소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연극 <글로리아> 속 또 다른 생존자 로린의 대사는 수의 의견에 힘을 더한다. “(글로리아는) 평범했어요. 평범한 일들을 했고, 굳이 얘기하자면, 직장에서 늘 혼자 있었어요. 그게 진짜 그지 같은 거죠. 직장은 곧 그녀의 삶이었으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녀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게 그렇게 놀랍지 않아요. 아주 건강한 환경은 아니었으니까요.”

잊을 만하면 터지는 비극 앞에서 우리 모두 가해자, 적어도 공모자 혐의를 벗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병리적 환경을 방조한 혐의 앞에서 필자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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