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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6 17:55 수정 : 2016.10.06 20:37

박보나
미술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단식이 7일 만에 중단되었다. 이 대표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위반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주장하기 위한 단식이라고 주장했고, 많은 사람들은 우병우 민정수석 및 케이(K)스포츠·미르 재단 등 현 정권의 부패 의혹을 파헤칠 국정감사를 방해하기 위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충성 퍼포먼스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바다가 보이는 집>(카르타(CHARTA) 출판, 2003)에서 발췌한 이미지. 사진 아틸리오 마란차노
실제, 단식이 작업 내용의 일부였던 미술 퍼포먼스가 있었다. 1946년 세르비아 태생의 미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2002년 뉴욕 숀켈리 갤러리에서 12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갤러리에서 생활하는 퍼포먼스 <바다가 보이는 집>을 발표한다. 작가는 갤러리 바닥에서 180㎝ 올라간 높이에 세 칸으로 나뉜 열린 구조의 공간을 설치하고, 공간과 바닥을 연결하는 사다리에 칼날을 박음으로써 내려오는 길을 상징적으로 차단한다. 12일의 전시 기간 동안 아브라모비치는 그 공간에서 내려오지 않고 살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갤러리 운영 시간 동안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조용히 누워 있는 작가의 일상적인 모습과, 용변을 보거나 샤워를 하는 등의 작가의 매우 사적인 순간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침묵의 소리를 들으면서, 결연한 긴장감과 먹먹한 유대감이 서린 작가의 눈빛을 담을 수 있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발칸반도 구 유고슬라비아 체제에서 성장했다. 끊임없는 내전과 분쟁으로 점철된 발칸반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체험한 아브라모비치는, 폭력과 죽음,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퍼포먼스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1997년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4일간 매일 6시간씩 유고슬라비아 민요를 부르며 1500개의 소뼈의 피를 닦는 퍼포먼스 <발칸 바로크>에서 조국의 피의 역사를 처절하게 애도하고 비난했으며, 퍼포먼스 파트너였던 독일 미술가 울라이와 지칠 때까지 서로의 뺨을 때리는 퍼포먼스 <빛/어둠>(1977)과 서로 마주보고 잡은 활시위의 화살이 날아가지 않도록 힘을 유지하는 퍼포먼스 <정지 에너지>(1980) 등을 통하여 인간관계 안에서의 폭력과 신뢰에 대한 고민을 표현했다. <바다가 보이는 집>은 아브라모비치가 탐구해온 이러한 주제의 연속적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01년 뉴욕에서 9·11 테러가 일어나고 일 년 뒤에 이루어진 이 퍼포먼스에서, 아브라모비치는 단식과 감금이라는 제의적 과정을 통해, 세상에 가득 찬 증오와 갈등을 육체적 고통으로 비워내고 그 빈자리를 침묵의 연대와 위로로 채운다.

아브라모비치의 <바다가 보이는 집>은 작가의 옅어지는 육체 에너지가 관객과의 더 강렬한 교감 에너지로 전환되는 감동이 있었던 작업이다. 관객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배경과 연관되어 있으며, 작가가 지속적으로 다뤄온 주제를 극한의 고통으로 표현한 퍼포먼스에 진심을 느끼고 기꺼이 몰입할 수 있었다. 반면, 이정현 대표의 단식은 퍼포먼스의 관점에서 여러모로 아쉽다. 이 대표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집권 여당 대표라는 배경에 맞지 않는 형식의 선택과 단식 퍼포먼스에 대한 이 대표의 일관성 없는 태도 때문에, 관객들의 충분한 이해와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이러한 오류는 애초에 이정현 대표가 말하는 퍼포먼스의 주제가 작업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퍼포머의 손가락은 정세균 의장을 가리키고 있으나, 온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을 막고 있는 모양새가 그랬다. 12일 동안의 단식 퍼포먼스, <바다가 보이는 집>이 끝나던 날, 아브라모비치는 흐느끼는 관객들의 포옹과 박수를 받으며 멋있게 사다리를 내려왔다. 관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단식을 중단하고 구급차에 실려 나온 이정현 대표의 ‘푸른 집이 보이는 방’ 퍼포먼스와는 사뭇 다른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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