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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0 17:59 수정 : 2016.10.20 19:14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조선인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했다나봐.” “예?” “도쿄 간다인가 어딘가 모여서.” “아니, 그게.” “독립이라니.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요?” “그야 물론이지.” “도대체 왜요?” “그야 자기들 나라니까.” “아니, 조선이 합치고 싶어 해서 합쳤던 거 아닌가?” “뭐, 그야 그렇지만, 생각이 다른 인간도 있는 거겠지.” “너무 멋대로잖아, 그거.” “응.” “다다이즘 같아.”

다다이즘 같은 이 대화는 희곡 <서울시민 1919>의 대사다. 제목의 1919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을 가리킨다. 그러나 서울시민은 조선인이 아니다. 당시 서울에 거주했던 일본인을 지칭한다. 이야기는 1919년 서울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던 일본인 시노자키 일가의 일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연극 <서울시민 1919> 포스터. 30스튜디오 제공
<서울시민 1919>는 ‘조용한 연극’으로 알려진 일본의 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서울시민’ 연작 중 2번째 작품이다. 히라타 오리자는 1989년 <서울시민>을 시작으로 2011년 <서울시민 1939·연애의 2중주>와 <상파울루 시민>까지 10년을 주기로 한 ‘서울시민’ 5부작을 완성한다. 우리가 했어야 할 일을, 일본 작가가 한 것이다.

“조선이 합치고 싶어 합쳤던 것” 등의 인용문과 작가의 국적만 보면,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작품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서울시민 1919>는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그 대척점에 서 있다. 악질 순사나 악덕 업자 등 전형적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고, 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그저 평범한 일상을 통해 식민지배의 잔혹성을 고발한다.

이러한 <서울시민 1919>는 2000년 일본의 한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 첫 공연을 앞두고 작가는 노심초사 근심이 많았다고. 일본 관객의 반응을 염려했던 건 아니었다. 민감한 주제를 다루며 유머를 많이 섞은 게 걱정거리였단다. 그때 그에게 “더 웃겨도 좋다”고 힘을 실어준 이는 문화게릴라 이윤택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이윤택은 <서울시민 1919>의 국내 초연의 연출을 맡았다. 이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았다. 연희단거리패의 새 둥지 30스튜디오 개관을 기념해, 히라타 오리자가 세이넨단과 함께 <서울시민>과 <서울시민 1919> 두 편을 무대에 올린다. 이어 이윤택이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서울시민 1919>를 무대에 올린다.

극장 개관은 축하할 일이나 사정을 들으면 마냥 축하할 수는 없을 듯싶다. 연희단거리패는 창단 20주년을 맞았던 2006년 게릴라극장을 개관해 <경숙이, 경숙아버지>, <먼 데서 오는 여자>, <못생긴 남자> 등 문제작들을 선보였다. 그 게릴라극장이 개관 10년 만에 운영 적자로 폐관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이 뒤에 국가의 검은 그림자가 엿보인다. 이윤택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지지 찬조연설을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 최근 공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기명되지 않았지만, 관련 기사에는 그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대표적으로 탄압받은 인사이기 때문이다. 게릴라극장의 폐관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듯 리스트의 존재가, 예술가 검열·탄압 사례가 만천하에 공개되었음에도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여당은 근거 없는 낭설이라며 거짓을 일삼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서울시민 2016’을 본다. 히라타 오리자는 작품과 관련해 “식민지배가 괴물이나 악마의 소행은 아니며, 보통의 인간이 별생각 없이 거기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에 식민지주의의 무서움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근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부패한 정권의 지배가 괴물이나 악마의 소행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에서, 중앙행정기관에서, 산하 공공기관에서, 그 외의 기관에 종사하는 보통의 인간이 별생각 없이 악행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에 그 무서움이 있다. ‘서울시민 2016’이 쓰인다면, 비판의식 없이 시류에 편승하려는 순종적 시민이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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