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27 18:21
수정 : 2016.10.27 20:20
박보나
미술가
얼마 전 일곱살짜리 조카가 아파트 단지 앞에 세워져 있는 하얗고 둥그런 조각상이 무엇인지 동생에게 물었다고 한다. 아빠, 엄마, 아이가 서로 정답게 껴안고 있는 화목한 가족을 표현한 미술 작품이라는 동생의 설명에, 조카는 혼자 살면서 가족이 없는 사람이나, 아이가 없는 가족들이 슬퍼하면 어쩌라고 저렇게 만들어놓았느냐는 기특한 반문을 했다고 한다. 가족 단위의 거주자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의 특성을 고려하여, 작가가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했을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를 지루하고 ‘평범하게’ 표현한 이 조각상은, 일곱살짜리 어린이에게조차 이 ‘무난함’과 ‘일반적임’ 그리고 ‘평범함’의 의미에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전시장을 일부러 찾아온 관객에게도 작품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공공장소에 느닷없이 세워놓은 작품이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설득력을 갖기란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설득은 일방적인 ‘일반성’을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려고 할 때, 거의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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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김, 하늘색 깃발(안양), 2016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5 커미션. 주용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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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은 현대미술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갤러리 공간에서 벗어나, 공공장소에서 관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이며, 미술의 공공 기능을 고민하는 과정이다. 2005년부터 시작되어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도 이런 공익적 취지를 갖는 공공미술 행사다. 대부분의 참여 작가들이 안양의 문맥을 드러내고, 안양과 관계 맺는 작업을 선보인다. 1회와 2회 때는 건축 구조물과 작품들이 안양유원지와 평촌 주변의 안양 시내 곳곳에 설치되었고, 3회 때는 지역사회와 연계한 교육 등의 프로그램 위주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며, 4회에서는 기존 작품들을 정비하고 작품들에 대한 아카이브를 만들고 공공도서관을 조성하면서 그동안의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술계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공공미술의 여러 가지 모순들을 드러냈다. 일부 시민들은 자신들이 지나다니던 길목에 갑자기 생겨난 미술 작품들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한 타당성 있는 의심부터, 색감 및 형태 등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 의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기도 했고, 작품들의 보존과 관리 문제는 공무원들에게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지속성에 대한 한계와 함께, 프로그램이 작가의 작업 완성을 위한 미술 프로젝트인지, 시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의 일환인지에 대한 혼란과 갈등도 있었다.
지난 10월15일에 시작해서 두 달간 진행되는 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지난 10년간의 공공미술에 대한 실험과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주제나 제목을 정하지 않되 안양의 시민을 소외시키지 않고, 안양을 드러내겠다는 태도는 강조한다. 참여 작가들은 ‘공공’의 개념을 개별적이고 다양하게 해석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예술공원 전망대 위에 안양의 하늘 색과 같은 색으로 천연 염색한 깃발을 설치한 바이런 김의 작업은 요란한 구경거리로 안양의 풍경을 가리는 대신에, 조용히 안양의 하늘을 드러낸다. 공원을 방문한 시민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바이런 김의 작업을 발견하면서, 풍경의 일부가 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에 작가가 찍은 이미지를 같이 끼워넣어 배달하는 김소라의 작업이 안양 시민들을 만나는 사사로운 방식도 흥미롭다.
‘공공’은 넓은 범위의 추상적 개념인 만큼 구체적 의미와 대상이 합의된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공공미술에서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의 목적과 방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공공의 대상과 목적에 개별적으로 유연하게 접근할 때, 공공미술은 좀더 설득력을 가지며 풍부해질 수 있다. 공공에 대한 개념과 관계 맺는 방식을 헐렁하게 열어놓은 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그래서 한결 편안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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