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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0 18:38 수정 : 2016.11.10 20:40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지난 8일 화요일, 광화문광장. 허허벌판 광장의 바람은 매서웠다. 기온은 5℃ 안팎이었지만, 체감온도는 영하를 오르내렸다. 오후가 되자 이곳 이순신동상 앞으로 남녀 몇몇이 모여들었다. 다음은 그들 중 두 남자 사이에서 오간 대화다.

“장관님께서는 지금 정치검열이 이 문화계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저희가 별도로 그런 정치검열을 위해 지시를 내리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다. 실제 지원하고 그것에 대해서 공연한 오해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치 ‘정치검열’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대서특필’되는 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 백주대낮에 정치검열이라는 단어가 자꾸 나오는 것에 대해서 제 스스로는 용납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장관님 생각은 어떠세요?”

“예, 존경하는 박창식 위원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기서 장관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고, 박창식 위원은 새누리당 전 의원이다. 물론 그들이 광장에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위 대화는 지난 6월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이 초연했던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의 대사로, 광장에서 대사를 주고받던 이들은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었다. 인용한 대사는 지난해 10월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의원과 장관 사이에 실제 오갔던 질의응답이다. 이들은 정치검열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대서특필하는 언론이 문제라고 사실을 호도했지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이는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제공
그런데 저 배우들은 왜 칼바람 부는 광장으로 나왔던 것일까? 연습실 대관 비용이 부족해서? 아니, 자금 사정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는 지난 4일 박근혜 퇴진 시국선언을 발표했던 문화예술인들이 시국선언 후 펼치고 있는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 설치 퍼포먼스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에는 드림플레이 테제21 배우들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문화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처럼 요즘 연극인 중 대학로 대신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연극인이 여럿 있다. 저녁이면 혜화역을 향하던 관객들의 발길 또한 광화문역으로 옮겨졌다. 하긴 대학로 웬만한 연극보다 박근혜, 최순실이 쓰고 연출한 드라마가 더 압도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이들의 치밀한 극본과 정교한 연출 앞에 ‘내가 이러려고 창작자가 되었나’ 자괴감을 느끼는 창작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이들은 학원물부터 멜로, 범죄, 누아르, 공포, 스릴러까지, 공상과학만 빼고 온갖 장르를 두루 섭렵한 게 아닐까 싶다. 가히 그들이 그동안 왜 융복합을 주장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게다가 배우들의 눈빛 연기마저 일품이니, 대학로 관객을 뺏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심지어 그들의 드라마는 외신을 통해 매일매일 전세계로 타전되고 있으니, 그들이 원했던 한류가 이렇게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 막장드라마도 종영할 때가 왔다. 드디어 내일, 드라마의 조기종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민중총궐기가 광화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궐기에는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하듯, 광화문은 물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아일랜드, 일본, 인도네시아 등 10개국 37개 도시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주연배우의 법정구속을 요구하는 그들의 함성이 들린다면, 드라마의 결말은 법정물로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에둘러 왔지만 마무리는 연극 이야기로 하겠다. 필자는 드림플레이 테제21이 따듯한 연습실로 돌아가길 바란다. 배우는 무대로, 관객은 객석으로, 연극인은 대학로로, 국회의원은 여의도로, 국민은 각자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하나 있다. 이 막장드라마를 쓰고 연출한 장본인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는 제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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