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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7 18:25 수정 : 2016.11.17 20:43

박보나
미술가

‘이런 시국에 전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요새 미술 작가들은 애써 준비한 전시 소식을 전할 때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최순실로 시작하여 차은택으로 이어지는 박근혜 게이트는 모든 국민을 기만했고, 문화계와 미술계도 속속들이 꼼꼼하게 헤집어 놨다. 예술가 블랙리스트는 공식적으로 나온 이름만 그 정도이고, 정부에 찍힌 미술 공간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는 작가들의 제외된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주변에 정유라의 말값을 위해 ‘삥 뜯긴’ 작가가 한둘이 아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감독의 어이없는 해임부터, 매번 뒤집히던 프로젝트들과 예산 삭감은 차은택과 김종덕의 작품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간부 기획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개입으로 특혜 임용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미술계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할 큐레이터와 작가를 뽑는 심사 과정에는 차은택-김종덕 라인으로 의심받는 우상일 문체부 정책관이 들어감으로써 영향을 끼치려 한 게 아니냐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이런 혼탁한 상황 속에서 다른 미술인들도 나처럼 입안의 이가 모두 서걱거리며 흔들리는 느낌일 것이다. 너무나 비정상적인 세상에서 창작을 하고 글을 쓰는 것에 침착하게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정상적으로 전시를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심지어 미안해서 화가 난다.

믹스라이스의 <덩굴 연대기>(2채널 영상, HD, 2016).
박근혜를 걷어내니 최순실이 나오고, 최순실을 걷어내니 차은택이 나오고, 다시 김종덕이 나오고, 그리고 우상일이 나온다. 여러 겹으로 되어 있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겹겹이 싸인 구조가 가짜인데, 그 안에 담긴 알맹이들은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올해의 작가상에 협업 듀오 그룹 믹스라이스가 수상을 했다는 소식은 이 난국에 위로가 된다. 믹스라이스는 2002년 이래로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협업을 이어왔다. 2006년 이래로 마석 가구단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교류하면서 공단 안 공동체의 생성과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같이 작업해왔다. 그 결과물 중 하나인 <마석동네페스티벌>(MDF)은 2012~2014년에 걸쳐 열린 것으로, 가구단지 안에서 록페스티벌을 개최한 작업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진화하는 식물>(2013)은 개발 등으로 인해 옮겨지거나 버려지는 식물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다. 댐 건설 등으로 마을이 없어지면서 서울 강남 아파트의 정원수로 이식되어 시들어가는 시골 마을의 수백년 된 수호수의 모습이 서글프다. 마석 작업에서 믹스라이스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외부 이방인으로 진부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자 동료로서 함께 작업한다. 그리고 떠도는 식물 작업을 통해 이주의 문제를 우리의 영역으로 가져온다. 뿌리가 뽑혀 옮겨지는 나무들은 고향을 떠나 오르는 월세에 쫓겨 수도 없이 이사를 반복하는 우리, 나를 연상시키고, 이것은 외국인 노동자의 이향과도 겹쳐진다. 믹스라이스는 이주노동자나 나무 한 그루를 주변으로 소외시키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자 우리의 얘기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적 관계는 작품의 완성을 위해 쓰고 버리는 임시적인 것이 아닌, 15년에 가까운 지속적인 실천이라는 점이 훌륭하다.

가짜와 또 가짜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착취했던 구조 안에서 국민들은 희망을 ‘삥 뜯겼다’. 이 믿을 수 없는 정치, 폭력적인 경제 구조 안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주변과 내 이웃이라는 작은 알갱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믹스라이스 작업의 타인을 소외시키지 않는 공동체 의식처럼, 그리고 토요일 촛불집회에서 기꺼이 불을 나눠주던 옆자리 학생처럼, 마트료시카의 제일 안쪽에 담긴 알갱이 하나하나의 개별성과, 알갱이들이 서로 꼭 잡은 손만이 결국은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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