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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01 18:09 수정 : 2016.12.01 20:45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 하고 부른다’고 써야 한다. (중략)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중략)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연극 <위대한 놀이>. 극단 하땅세 제공
위는 헝가리 태생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일부다. 책표지엔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 쓰여 있는데, 저 문구가 판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작문기준을 적용했을 때, 저 홍보 문구가 엄정한 정확성을 지녔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홍보라는 게 일부의 거짓과 대개의 과장으로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한다면, 저 문구는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

총 3부작으로 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미완으로 그친 헝가리 반사회주의 체제 혁명,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 붕괴까지 세 시기를 배경으로 쌍둥이 형제의 성장과 이별, 홀로 남겨진 이후의 생을 이야기한다.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위대한 놀이>다. 원작의 방대한 분량 탓에, 연극은 소설의 1부인 <비밀노트>의 내용만 추려 연극적 언어로 선보인다. 추려내는 과정에서 일부 장면은 삭제되거나 압축되었다. 또한 문학적 언어를 연극적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작가 특유의 건조한 문체가 연극의 양식적 문체로 치환되기도 하였다. 나아가 바닥면에 테이프를 붙여 공간을 구성하는 무대 설정은 영화 <도그빌>을 연상시키는데, 이러한 설정은 다른 예술에서는 표현되기 어려운, 무대예술에서 가장 유효한 방식으로 보인다. 이렇듯 연극 <위대한 놀이>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소설을 무대화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작의마저 축소하거나 변경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 필자가 앞서 언급한 작문기준을 제시하는 대목도, 비록 소설 그대로는 아니지만,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저 작문기준은 필자가 지향하는 원칙과도 상통한다. 늘 지키지는 못하는 게 유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모든 글쟁이에게 저 기준을 따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과학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작가도 존재하고, 반대로 심미적 주관성을 강조하는 작가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작가가 존재한다. 다만 필자는 저 지침을 고수하고자 할 뿐이다.

한편 저 기준은 글쟁이에게만 해당되는 기준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사회니까. 글쓰기는 더 이상 특정한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제로 꽤 많은 리트위트와 공유 횟수를 자랑하는 이들 중에는 전문작가가 아닌 이들이 상당하다. 그들 중에는 정확한 사실과 정연한 논리로 호응받는 이들도 많지만, 이와 무관하게 자극적 언사로 화제를 모으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을 충동하기에는 후자가 더 수월해 보인다.

어수선한 시절이다. 탄핵을 하느냐 마느냐, 시기를 언제로 하느냐 의견이 분분하다.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지만, 답답하리만치 원칙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속 시원한 응징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들은 후자로 보인다. 오랫동안 사숙했던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원칙주의자는 나중에 쓸쓸하다고. 필자는 그 쓸쓸한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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