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16 18:16
수정 : 2017.02.16 21:43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예술감독
‘평창겨울음악제’가 열리는 알펜시아 콘서트홀 근처엔 한창 동계올림픽을 위한 선수촌 건설로 들썩거렸다.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뮤직 페스티벌로 자리잡은 이 축제는 최근 2가지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2004년부터 호명되어온 대관령국제음악제란 이름 대신 ‘평창대관령음악제’로 개명했고, 겨울음악제도 신설해 이원화한 것이다. 내년으로 다가온 동계올림픽에 문화적 힘을 보태려는 일환인데, 여름축제가 정통 클래식 음악 위주로 구성된다면 겨울축제는 동계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 여행객을 타깃 삼아 재즈음악까지 프로그램의 지평을 넓힌다. 전통과 현대,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다양한 무대가 펼쳐질 평창겨울음악제, 그 개막 공연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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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겨울음악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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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국악과 클래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편성으로 시작되었다. 작곡가 임준희는 춘향가에서도 가장 친근한 멜로디인 사랑가의 대목을 따왔는데 판소리에는 춘향을, 첼로에는 이몽룡의 역할을 각각 부여하고 있었다. 몽룡의 음성처럼 저음역에서 연주되는 첼로는 춘향의 판소리를 때때로 어르고 리드하면서 마치 대선율(Counterpoint)처럼 국악의 원형을 든든히 지탱했다. 한편, 소리북과 피아노는 진양과 중모리, 자진모리 등의 장단을 주고받으며 밝고 해학적인 에너지를 전해주었다. 국악의 창(唱)과 양악의 기악을 이물감 없이 한데 어우러지도록 조율하기 위해서는 작곡 과정과 연습 과정 공히 치열한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다. 명창 안숙선은 이를 두고 ‘활시위를 당기는 듯한 긴장’이라고 언급했는데, 유의미한 진화를 위해서는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이 먼 듯도 싶었다.
연이어 무대에 오른 재즈 피아니스트 존 비즐리는 축제기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총 5번의 공연을 펼쳐낼 이번 음악제의 메인 아티스트이다. 악보에 지시되어 고정된 음악이 아니라 ‘그 순간의 영감’과 ‘여기 이 공간’의 느낌을 전달하는 재즈 음악의 대가답게 자유분방한 음색의 궤적이 인상적이었다. “매 순간 악보를 새로 쓰며 연주한다”는 비즐리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텔로니어스 멍크의 음악을 빅밴드 편성으로도 들려줄 예정이라 소개하며 관객의 기대감을 높였다.
공연의 후반부는 온전히 피아노 듀오 ‘앤더슨 앤 로’에게 할애되었다. 이들은 직접 제작한 뮤직비디오로 열띤 선풍을 일으키며 클래식 음악은 진지하다는 선입견을 일거에 뒤틀어버린 바 있다. 도발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동양과 서양, 남과 여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매혹적인 섹슈얼리티를 내세워온 이 듀오는 이번 무대 역시 강렬한 선곡과 프레젠테이션으로 청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주곡의 성격에 따라 두 사람은 마치 연극배우처럼 음악적 의상을 바꿔 입었다. 사랑을 나누거나, 전투를 벌이거나, 혹은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이거나. 기존 레퍼토리의 답습에 머물지 않고 모든 작품을 스스로 편곡할 수 있었으니, 연주법의 재기 발랄한 확장도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피아졸라의 탱고’에서 건반 영역을 과감히 벗어나 현의 울림까지 손으로 제어하면서 이질적인 음색을 발견한다든지, ‘존 레넌의 렛 잇 비’에서는 가스펠의 화성까지 배음의 영역으로 이끌어온다든지, 퍼포먼스만큼이나 참신한 음악적 시도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했다.
개막공연은 강원도민을 대상으로 한 무료 초청공연이어서 예매가 불가능했다. 지역주민을 위한 주최 쪽의 섬세한 배려였을 것이다. 연주자들의 친절한 해설도 좋았다. 연주 전후, 음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자신들의 연주가 지향하는바, 평창에서 공연하게 된 감회 등을 상세히 들려주었던 것. 다만, 외국인 연주자들의 해설을 통역 없이 전달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애초 지역주민을 위한 초청공연으로 기획되었다면, 통역 또한 섬세하게 준비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문화올림픽의 면모를 품은 대표 프로그램이어야 할 평창음악축제, 그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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