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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06 18:33 수정 : 2017.04.06 21:28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그 옛날 세 종류 사람 중, 등이 붙어 하나 된 두 소년, 그래서 해님의 아이. 같은 듯 다른 모습 중 돌돌 말려 하나 된 두 소녀, 그들은 땅님의 아이. 마지막 달님의 아이들. 소년과 소녀 하나 된, 그들은 해님 달님 땅님의 아이.”

뮤지컬 <헤드윅>의 넘버 ‘사랑의 기원’의 일부다. 노랫말은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의 <향연>에서 가져온 것으로, 책에 따르면 태초에는 남성과 여성, 남녀성, 이렇게 세 가지 성(性)의 인간이 존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 발생하고, 이에 제우스는 인간을 반으로 쪼개는 벌을 내린다. 벼락을 맞은 남성은 남성과 남성으로, 여성은 여성과 여성, 그리고 남녀성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었고, 이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며 찾기 시작했다. 남녀성에서 분리돼 나온 남성은 여성을, 반면 남성으로부터 분리돼 나온 남성은 남성을 찾아 헤매었다. 여성도 마찬가지. 긴 이야기를 한 줄로 줄이면 ‘동성애는 이성애처럼 자연스러운 사랑’쯤 될 것이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4월6일 개막한 연극 <이반검열>은 그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다. 제목의 ‘이반검열’은 2000년대 중반 중·고등학교에서 실제 자행된, 그리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을 동성애자 색출작업을 의미한다. 그중 ‘이반’이란 이성애자에 반대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여기에는 동성애자는 물론 양성애, 다성애, 무성애 등 다양한 성적지향성을 가진 이들이 포함된다. 성적정체성도 포함해서 말이다.

불이 켜지면 무대 중앙에 ‘이반’이란 글자가 나타난다. 주인공은 각기 다른 성적지향성과 성적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성적 지향성·정체성을 깨닫게 된 계기와 사실이 알려졌을 때의 주변 반응, 그리고 그때부터 겪게 된 차별과 폭력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는데, 그게 남자(동성)였을 뿐이죠.”,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인데, 시선은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이해는 하는데, 고칠 수 있는 거지?’라고 물어요.” 그들의 고백은 ‘이반-시선-학교-검열-폭력’ 순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암전.

다시 불이 켜지면 무대 중앙에 ‘세월호’ 세 글자가 나타난다. 주인공은 세월호 생존학생들이다. 구조는 동일하다. 세월호-시선-학교-검열-폭력. “저희는 구조된 게 아니라 살아남은 거죠.”, “울면 ‘아직도 우냐?’ 웃으면 ‘어떻게 웃냐?’고 해요”, “할아버지는 ‘네가 그런다고 뭐가 바뀔 것 같으냐?’고 해요.” 그들은 참사에서 살아남은 후 생존자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주변 반응, 그리고 그때부터 겪게 된 차별과 폭력을 차분하게 고백한다. ‘이반’이 ‘세월호’로 대체되었을 뿐, 그들을 향해 세상이 가하는 폭력의 양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다시 암전.

다시 또 불이 켜진다. 이때부터 이야기의 층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된다. ‘이반’의 자리에 누구를 앉혀도 울림에 변함은 없다.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이주여성, 이슬람교도, 국가보안법 피해자,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등. 다양한 이들이 등장해 자신이 받은 무시와 멸시를 고백한다. 거푸 ‘고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건 무대 위 모든 대사들이 실제 피해자들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작품에는 단 한 줄의 허구도 없다. 모든 대사는 관련기록과 책자, 언론기사에서 발췌했다. 작가의 상상이나 해석은 한마디도 없다. <이반검열>은 순도 100% 진실한 고백의 연극이다.

주목할 건 그뿐만 아니다. 그들의 고백이 수평의 무대에서 진행되는 동안, 수직의 스크린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었던 정치권과 보수단체, 그리고 기독교단체의 발언 내용들이 쏟아진다. 시의성을 살려, 이번 당내경선을 치르며 각당 대선후보들이 했던 발언도 등장한다. 안타까운 점은 수직의 권위가 수평의 평등과 각을 좁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인식보다 앞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 실천하는 권위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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