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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1 18:12 수정 : 2017.06.01 20:33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한국적 피아니즘의 치열한 최전선’인 동시에 ‘작곡가와 연주자의 실제적 소통’을 체험한 흥미로운 현장이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은 ‘스튜디오2021’의 활동을 통해 현대음악 시리즈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작곡가와 연주자, 음악학자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예술창작 과정을 함께 탐색하는 것이 이들 활동의 가장 큰 특징이다. 5월22일에 열린 이번 공연은 ‘에튀드의 모든 것’(Tout sur les Etudes)이란 야심찬 주제를 내걸고 피아니스트 27명이 작곡가 27명의 에튀드를 연주하며 한 무대에 올랐다. 장장 3시간 동안 별의별 에튀드의 찬란한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공
에튀드는 연습곡을 일컫는다. 악기를 다루는 기술적인 능력을 훈련하기 위해 기악 연주자들은 이 에튀드를 늘 붙들고 산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에튀드에 얽힌 통한의 사연 혹은 애증을 갖고 있을 것이다. 대개 빛처럼 빠른 음형으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악상이어서 연주자의 역량이 적나라하게 발각되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역시 하농(아농)으로 시작해 쇼팽을 거쳐 리게티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에튀드를 단련하며 10개 손가락의 당당한 독립을 꿈꾼다. 짧은 시간 안에 최선의 기량을 폭발시켜야 하는 에튀드 연주는 콩쿠르나 입시곡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그러니 동료 중 누군가는 ‘단판 승부로 끝나는 100미터 전력질주’라 비유했고, 누군가는 ‘아찔한 롤러코스터’라 응수했으며, 누군가는 ‘말 그대로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곡’이라며 온갖 투정을 단박에 수습하기도 한다.

스튜디오2021의 이번 프로젝트는 ‘현대적 에튀드의 새로운 발견’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전반부는 쇼팽과 생상스, 스트라빈스키처럼 잘 알려진 작곡가의,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에튀드를 재발견해 연주했고, 중반부는 세계대전 이후 아직 우리에게 낯선 작곡가들의 에튀드를 발굴해 소개했다. 모슈코프스키가 자신의 에튀드 악보에 새겨놓은 라틴어 문구처럼, 모든 에튀드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별에 도달’(Ad astra per aspera)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악기와 신체의 한계를 끊임없이 닦달하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면서도, 시대 흐름에 따라 점차 진화하는 양상이 흥미로웠다. 비단 손가락의 훈련뿐만 아니라 음향에도 섬세하게 감응하는 청력의 훈련, 악보에 담긴 복잡다단한 정보를 파악하는 지력의 훈련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튀드의 기능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심층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각별한 무대였다.

전반과 중반의 묵직하고 찬란한 향연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의 핵심은 후반에 있었다. 12명의 작곡가가 자신의 에튀드를 연주할 12명의 피아니스트와 짝을 이뤄 차례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학부생부터 중견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작곡가의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자신의 에튀드에 담겨 있는 음악적 아이디어와 의의를 작곡가가 해설할 때, 연주자는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악기로 구현될 수 있는지 생생한 임상현장을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대개의 연주자들은 어려운 테크닉을 무작정 연마하며 실수 없이 연주하는 데 급급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현장은 연주자로 하여금 왜 이 에튀드를 연주하고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근원적 성찰을 생생하게 각성시켜 주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작곡가 역시 작곡 과정의 시작부터 연주자와 긴밀히 연결하면서, 머리로만 상상했던 곡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들은 공통관습시대의 연습곡을 낯설게 비틀며 ‘지금까지 없던 에튀드’를 시도하고 있었다. 안티 비르투오시티(연주기교)를 기치로 내걸며 극적 표현을 일부러 절제하거나, 피로에 지친 악기를 어루만지는 침묵을 위한 에튀드이거나. 세상의 변화를 담은 이 에튀드 프로젝트는 9월11일 일신홀에서 완성된 무대로 다시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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