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7.06 17:45 수정 : 2018.10.01 13:48

박보나

미술가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 설치, 가변크기, 2002
지난 주말 서울에 사는 외국인 부부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한-미 정상회담이 있던 다음날이었고, 참석한 외국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회담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영국인 기자 친구는 백악관 정상회담 중에 한국 기자들의 취재 열기 때문에 있었던 소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애완견을 진정시키듯, ‘Easy, Fellas’(이봐들, 진정해!)라며 하대적인 표현을 쓴 것이 꽤 무례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 주재 유럽인 외교관 친구는, 그런 사소한 표현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 한국에 상당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한국인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재협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 반박에 대해, 한국은 미국이 원하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느냐며, 한국의 미국 의존성을 꼬집었다. 전반적으로 유쾌한 시간이었음에도, 한국을 둘러싼 역학적 정세에 대한 외부의 직설적인 의견을 듣고 나니 저녁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새삼 서글펐다. 그리고 다시 새삼, 박이소 작가의 작업들이 그리워졌다.

박이소(1957~2004)의 본명은 박철호로, 박모라는 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박이소는 작업에서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과 탈식민주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1980년대 미국 유학 시절, <마이너 인저리>라는 대안 공간을 열어, 서구 중심의 백인 주류 미술이 아닌, 비주류 미술과 제3세계의 작가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1984년에는 사흘간의 단식 후 무쇠 밥솥을 목에 길게 늘어뜨려 매달고 뉴욕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는 퍼포먼스로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비장하게 표현했다. 바이올린을 손으로 끌고 다녔던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미술의 실험적 형식에 관한 것으로, 서구 미술계와 발걸음을 나란히 딛는 작업이었다. 반면, 백남준의 작업을 패러디한 박이소의 밥솥 퍼포먼스는, 서구 중심의 미술계에서 한국 작가로서 구분되는 속도와 보폭으로 걷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담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들어본 적도 없고, 그래서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는 세계의 지명들을 캔버스에 쓴 ‘드넓은 세상’(’03)은 박이소가 바라보는 세상이 뉴욕, 베를린, 런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로 밀려나고 소외된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먹으로 풀을 그리고, ‘그냥 풀’(’88) 혹은 ‘잡초도 자란다’(’88)라고 쓴 그림들도, 작가가 작지만 결코 약하지만은 않은 주변에 더 관심을 가졌으며, 그 주변이 중심의 질서를 흔들기 바라는 그의 바람을 드러낸다.

그래서 박이소는 별을 그려도 하나 더 그린다.(‘북두팔성’, ’97) 북두칠성으로 별자리가 온전히 완성되면, 별이 되고 싶은 주변은, 박이소는, 나는, 우리는, 그리고 한국은 빛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박이소는 공사장에서나 쓰는 실외 조명기를 연약한 각목에 얼기설기 덧대어 벽의 한쪽 구석을 눈부시게 비춘다. 이 작업의 제목은 자그마치 ‘당신의 밝은 미래’(’02)이다. 작업의 연약한 시각적 요소가 작가의 구석에 대한 배려와 어우러져, 고맙고 울컥한다.

유럽인 친구의 말처럼, 우리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껴서 난처하기 그지없는 입장이고, 분단 상황으로 인해 더 곤란한 처지이다. 지리적으로도 고립되어 있고, 크기도 작은 우리나라가 사드든, 에프티에이든, 강대국의 이익 추구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만 종속적으로 의존하려 했던 이전의 보수 정권들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가 현명하고 균형있는 국제 관계를 통해 좀더 주체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계의 중심을 한군데로 고정하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드넓고’, ‘그냥 풀’도 ‘잡초’도 자라니까. 우리의 미래가 박이소의 여덟번째 별처럼, 빛났으면 좋겠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문화 현장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